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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Jul 12. 2021

최선을 다하는 여름


잔뜩 비를 머금은 무덥고 습한 대기가 머리칼을 목덜미에 쫄딱 붙여놓았습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코끝으로 귀밑으로 흐릅니다. 
 “선생님, 더우세요?”
 “응, 덥네. 너희들도 더워요?”
 나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아이들은 물을 마십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로 다닙니다. 어젯밤 빗방울을 머금은 나무는 나무비를 후두두 뿌립니다. 하트모양의 나뭇잎이 빽빽한 계수나무 아래로 아이들을 부릅니다. 
 “친구들아, 이리와. 여기 하트이파리 보여줄게요.”
 “와 정말 하트모양이다.” “예쁘다.”

“이거 선생님이 준비한 너희들을 위한 선물이야. 받아줄 수 있어요?”

“네? 뭔데요? 네, 주세요.”
 나는 작은 나뭇가지를 살살 흔들어 나무비를 조금 뿌렸습니다.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어린이들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발을 구르면서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이번엔 높은 곳의 커다란 나뭇가지를 팔을 뻗어 세차게 흔들어줍니다. 아이들은 신나는 비명과 함성을 질러대며 좋아합니다. 아예 옆의 커다란 나무그늘로 옮겨가서 나를 부릅니다. 너무 높아서 팔이 닿을까 말까한 나뭇가지를 까치발을 들고 팔을 휘저으며 붙들어서 한바탕 소란을 피웁니다. 어린이들과 나는 몇 번의 물난리를 만난 숲 산책에 땀으로 젖고 나무비로도 젖었습니다.     



오전 숲 체험이 끝났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숲 가방을 정리하고 하천가에 피어있는 꽃길에 들어섭니다. 꽃길이라고 공원에서 관리하는 화초가 잘 정돈된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됩니다. 여름의 뜨거운 기운에 쑥쑥 자라난 개망초들이 허리춤까지 올라와 하천변의 오솔길을 가려버렸습니다. 길가로 늘어진 초록 풀들이 습한 여름바람에 꺾일 듯 말 듯 휘청댑니다. 풀줄기마다 하얗고 동그란 작은 꽃송이들이 매달려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아침 하늘을 두텁고 진한 회색빛 구름이 반쯤 덮었지만 반대편 하늘은 있는 힘껏 구름 장막을 열어젖히고 있습니다.     


하늘거리는 망촛대 사이에 유난히 휘청거리는 풀줄기가 보입니다. 잠자리가 앉았습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같이 있습니다. 한 마리가 꼬리로 다른 한 마리의 목덜미를 꽉 움켜쥐고 동반비행을 하다가 망초에 내려앉습니다. 수컷이 암컷의 목을 붙든 채 알 낳을 장소를 찾고 있나봅니다. 수컷 잠자리 발끝에 하얀 밥풀떼기 같은 것이 매달려 있습니다. 밥풀 같기도 하고 작은 날개 같기도 한 잠자리의 발이 꽃잎처럼 빛납니다. 검색해보니 방울실잠자리라고 합니다. 선생님들은 신기하고 예쁜 잠자리를 놓칠세라 핸드폰을 들고 찰칵찰칵 셔터를 누릅니다. 남의 신혼에 끼어들어 소음을 내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미안, 하던 것 마저 하렴.’ 하고 발길을 옮깁니다.

    

개망초 군락은 하천변 산책로를 환하게 밝혀줍니다. 귀화식물인 개망초는 생명력이 강해서 밭둑, 들판, 빈 땅만 있으면 여름부터 가을까지 어디에서든 잘 자랍니다. 사람들의 경작지에 들어와서 농사를 망친다고 미움을 받는 식물입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았지만 사람에 의해 옮겨진 식물은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 합니다.     


하천가에는 검은물잠자리,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닙니다. 자연의 시간은 느릿느릿하지만 뒤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올챙이들을 잡아먹고 살던 잠자리 유충도 올챙이들이 개구리가 되는 때에 맞추어 물속생활에서 벗어나 날개돋이를 마쳤습니다. 잠자리들은 짝 찾기와 먹이 찾기에 열중하느라 갈대 사이를 부지런히 다닙니다. 눈부신 노란 새가 강 가운데 버들 숲을 가로질러 날아갑니다. 꽁지의 까만 깃털 덕분에 노란빛이 눈에 띄게 화려합니다. 꾀꼬리입니다. 노래 소리 못지않게 고운 자태에 홀려서 나의 눈은 새의 흔적을 따라갑니다.     

돌아오는 길가 담벼락아래 꺼져가는 불꽃인 듯한 능소화가 떨어져 있습니다. 여름의 색은 강렬합니다. 나뭇잎도 신록을 벗어나 진초록이 되고 꽃 색도 태양의 에너지를 듬뿍 받아 붉은 색 꽃이 많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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