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실궁리 Nov 05. 2021

b의 결혼식

이렇게 울지는 몰랐다


 친구 b가 결혼을 했다. 요즘에는 늦지도 않은 나이지만 대체적으로 빨리 결혼을 한 우리들 사이에서 b는 거의 막차를 타고 결혼을 했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만난 지금의 연인과 서울에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미 신혼집을 구하고 직장을 옮겨 적응을 하고 있었던 터라 긴장은 덜했겠지, 어떤 마음인지 만나서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한 채 식장으로 갔다.

 경기도에서 서울 근처 식장까지야 부담이 없었지만 부산에서 오는 친구들은 장거리 이동이었다. 걸리는 시간은 경기도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결혼식장까지 가는 거리나, 비행기를 타고 바로 결혼식장으로 오는 거리는 비슷했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워졌으나 심적으로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다.


 지하에 있는 식장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내리막 옆으로 물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려 꽂혔는데 어느 부분에 현재 시간을 반짝 보여줬다. 시계 폭포인 것 같은데 아름다운 결혼식장 분위기와도 어울렸지만 한 커플의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을 보여준다는 듯한, 의미가 있는 식장의 상징물 같기도 했다. 그 사이로 가운데 광장을 보니 천장까지 연결된 기둥을 타고 노란 꽃장식이 풍성하게 꾸며져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허공으로 노란 알전구가 걸려 있었고 줄을 타고 덩굴식물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b는 자신의 연인과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우리의 도착을 알렸고 b는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는 찍고 있던 촬영에 집중했다. 몸매가 드러나는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있는 b를 보고 있자니 '드레서 꽉 껴서 숨도 못 쉴 텐데, 얼마나 긴장될까'하는, 먼저 겪어 봤던 드레스의 갑갑함이 다시 떠올랐다. 그럼에도 여유롭게 웃으며 촬영을 이어가는 b가 신기했다.

 6년 전의 나는 저렇게 침착할 수 없었는데, 이미 결혼식을 경험해봤던 우리들은 저마다 자신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불과 몇 년 차이로 달라진 드레스의 트렌드, 메이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한 기억, 단장을 하고 식장으로 가는데 꽉 막혀있던 도로, 도착하자마자 드레스 끝자락을 사수하며 발목이 보일 정도로 치마를 들고뛰었던 기억, 신부 대기실에 이미 와있던 친구들, 급하게 맞이했던 하객, 정신없이 찍어 댔던 사진들과 긴장할까 봐 먹었던 청심환, 덕분에 엄마 얼굴을 보고 울기는커녕 생글생글 웃으며 부모님께 인사했던 기억까지.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촬영이 끝난 b가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고 우리는 b의 어머니께 인사를 하러 갔다. "우째, 그 멀리 서들 왔노?" 하시며 손등을 쓰다듬어주시는데 "당연히 와야지요" 했던 친구의 말을 듣고 괜히 b를 보기도 전에 속이 울렁거렸다. 축하인사를 뒤로 하고 신부 대기실이 있다는 쪽으로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좌우로 있는 양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바로 오른편에 신부대기실 문이 보였다. 그 문 뒤에 b가 있을 테다. 다른 친구들의 결혼을 축하했던 느낌과는 다르게 조금 떨렸다.

 웅성거리는 신부 대기실로 들어서자 안 그래도 처진 눈썹 때문에 선한 인상을 가진 b가 기쁨과 슬픔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을 보자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돌아 나왔다. 한 명이 나오자 다른 한 명이 따라 나왔고 우르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왜 이 좋은 날, 눈물이 나올까.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신부 대기실에 들어가 b의 얼굴을 보는 순간, b 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들어가 마주쳤던 b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던 것 같다. 기쁨도 슬픔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참고 있는 듯한 눈빛.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예쁜 모습을 b의 아버지도 보고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힘든 내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b라서 더 무겁게 느껴졌던 무게, 그간의 속앓이를 헤아릴 수 없어 미안했던 감정이 한데 섞여 눈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눈물을 훔치고 들어간 대기실에서 우리는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엄마 눈 보면 눈물 날 거 같다'는 b의 말에 '속으로 애국가를 계속 불러라'는 돌고 도는 철 지난 멘트로 충고할 수밖에 없었다. 예식시간이 임박해왔고 식장에 들어와 앉아서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눈물이 많은 친구는 알아서 휴지를 준비해와 눈물을 훔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황당하고 웃겨서인지 눈물 빼는 광경은 일어나지 않았다. 온 마음을 다해 행진을 축하하고 환호했다. b가 자신의 연인과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기대기를 바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