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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Nov 26. 2021

나의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찬바람이 부는 평일 오후, 따끈한 국물요리가 생각나 아이와 마트를 갔다. 긴 복도를 지나 상가 안으로 들어서자 마트 근처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아저씨들이 높다란 나무에 작은 알전구들, 빨간 고깔모자를 쓴 하얀 곰인형 등을 배치하고 있었다. 같이 보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크리스마스트리 꾸미네! 아직 겨울 아니잖아?"


 하얀 눈이 펑펑 내려야 겨울이라고 생각하는 여섯 살 아이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눈 오는 겨울이 되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는 날이라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 지금도 겨울이긴 한데, 이제 조금 있으면 12월이니까 트리를 꾸미나 봐. 미리 트리를 만들어서 불을 켜놔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러 올 집이 잘 보이거든."

"그래? 그럼 우리 얼른 집에 가서 트리 꾸미자!"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트리를 찾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찾아준다는 말에도 참지 못하고 베란다로 나가더니 짐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며 도와달라고  아이에게 빨리 꺼내 주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찾았다. 구석에 세워져 있던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와 높은 수납칸에 들어있던 비닐봉지를 꺼냈다. 113cm 정도 되는 아이의 키를 넘는 플라스틱 나무를 2단으로 합체해서 세워놓고 접혀있던 나무 가지들을 힘주어 펼쳤다. 다음은 제일이라는 듯이 아이는 동그란  모양 볼과 네모난 선물 상자, 리본, 루돌프나 장갑 모양의 펜던트들을 나무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생각하니 신이 나는지 아이는 흥얼거리며 부지런히 트리를 꾸몄다.



 스물셋. 당시 남자 친구였던 신랑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크리스마스를 함께하고 있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익숙해진 만큼 크리스마스라는 날도 일상과 비슷해졌다. 사랑하는 연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 교환하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지내왔는데 아이가 설레며 산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게도 산타가 있었네,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미리 알고 있다가 몰래 선물해주는 산타처럼은 아니지만 해마다 원하는 선물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제법 서로에 대해 알법한데도 아직도 똑같은 레퍼토리로 싸우고 토라지고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결혼 3년 차쯤이었나,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있다.


 "결혼 생활에도 10년 정도 유효기간을 정해놓고 살아보다가 이후에는 다시 재계약을 할지 말지 생각해보는 게 있으면 좋겠어."


 당시에는 의미 없는 소리라 생각했는데  말속에는 우리에게도 유효기간이 주는 긴장감이 필요했던걸 지도 모른다. 평생 이대로 밋밋하게 흘러갈  같은 결혼생활, 죽음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실, 아무  없이 평온한 생활이 계속될 거라는 착각. 안일함에 조금의 긴장은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양말 대신 빛나는 전구를 더 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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