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이야기 1
글쓰기도 근육이라는데,
매일 글을 쓰기가 이리도 힘든 것인 줄 몰랐다.
판이 깔리면 매일 전문 작가처럼 글을 쓸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참 다르다.
내가 말과 글을 구분 짓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혼잣말'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에는 화자와 청자가 있다.
각자의 삶을 숨 가쁘게 살아가는 주변인들에게 내 어두운 고민까지 지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하루에 수만 가지 생각을 한다는데,
생각을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때때로 괴로웠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이렇게 힘든 의무를 지닌 인간에게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하나의 구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세상에 너의 괴로움을 너처럼 잘 알아줄 이는 없으니,
눈으로 보며 스스로와 대화하라고 만들어준 것 같았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애매모호한 온도로 나를 괴롭히던 후회와 불안이
차분하게 식어서 한 줄짜리 문장으로 풀려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손가락 마디 끝이 잔뜩 감정을 실어서 힘을 주고 있다가도,
내가 쓴 것들을 가만히 읽어내리며 잔뜩 가시 돋친 문장들이 오히려 힘을 빠지게 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결과로 내 행동의 가치를 판단했던 사람이다.
성적이 잘 나오면 공부를 열심히 한 것. 안 나오면 열심히 안 한 것.
이렇게 자란 건 부모님 영향도, 집안 사정도 있지만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나 그렇게 자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이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격하게 느끼고 나면,
법보다 더 위에 있는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사실들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진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을 갔으면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벌어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하고.. 뭐 엄청나게 제대로 지킨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억울할 때도 있다. 차라리 정말 이 사실들을 '진리'로 여겨서 열심히 살고 원하는 목표를 성취했다면 지금 내 모습은 조금 달랐을까?
어기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실제로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좋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가끔은 부모님께 손을 벌려도, 취업을 조금 늦게 해도, 원하는 삶을 스스로 꾸리기 위해 방황해도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의식적으로 알고 기꺼이 뛰어드는 것과,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의식적으로는 항상 두려움에 떠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딱딱하게 둘러싼 규칙들 아래 저질러지는 하나의 오류가 있다. '매몰비용의 오류'다. 좋은 고등학교를 진학한 것이 아까워서, 취업 준비를 오래 한 것이 아까워서, 대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까워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시간과 노력이 '감정적으로' 아까워서 쉽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비유를 하나 들자면, 나에게는 아주 여러 개의 시드가 있었는데, 부모님과 사회라는 투자자가 등장해 옳다고 생각하는 시드에만 투자를 한 거다. 내 몸집이 커질수록 나는 다른 시드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키워보고 싶은데, 이 투자는 절대 깨뜨릴 수 없는 '효'라는 개념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게 투자한 곳에서 결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아래, 파산하지 못하고 몸집만 불려 나가는 비상장 스타트업 같은 오류를 나는 자꾸 겪어왔다. 하나가 파산해야 다른 하나를 맛볼 수 있는 건데, 그 파산이 두려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정말로 파산일까?
이런 생각들을 거치며 허탈감과 결국 내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무거움에서 오는 무력감을 느꼈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적어도 이제 내 주변에는 '그렇게 살면 후회한다' 라느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둥의 무언가를 강요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에 감사하다. 내 방황을 오히려 방황으로 여기지 않아 주고 휴식과 충전으로 이해해 주며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고맙다. 곁들이는 말을 내뱉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궁금하고 걱정되지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가끔은 너무 울림을 줘서 미안할 때가 있다.
이 글을 빌어 내가 대체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해 보자면, 나는 방황하고 있다. 그냥 오늘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을 한다. 애쓰며 살아내려는 마음과 자유로이 즐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내 손으로 파산시키고 다른 길을 가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과거를 부정하기도 싫고 긍정하기도 싫어 파산만 시켜놓고 어디로 발을 뻗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지금까지 쌓아온 관념들이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기도 하고, 도태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 강박과 두려움을 가만히 바라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겨난 감정 응어리라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이 응어리들이 하나씩 풀리고 있기를, 그래서 다른 곳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 자유로운 마음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