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이야기 2
나는 옛날 음악을 좋아한다.
지금 막 나오는 최신 음악이 아니라 조금은 오래 된 음악들.
유튜브를 찾아보면 공연 영상 화질이 720p 를 넘어가지 않는 그런 음악들.
이 '옛날' 이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참 주관적이다.
내가 처음 팝송을 듣기 시작했을 때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테이시 오리코, 웨스트라이프,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90년대에 시작해 0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사람들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90-00 년대 알앤비가 주는 느리면서도 빠른 템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알앤비 말고 어떤 장르를 좋아하냐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나는 정말 얇고 넓은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서, kpop과 재즈 중에 잠시 고민하겠지만 결국엔 재즈라고 답하겠다. 흥을 끌어 올리는 데에는 kpop 만한 게 없지만, 그래도 내 일상의 bgm 은 대부분 재즈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노라 존스와 빌 에반스,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마리옹 꼬띠아르가 된 기분이 든다. 그녀가 20년대에 머물고 싶어했던 것처럼 나도 그 음악 속에 머물고 싶다. 공간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음악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게 참 매력적이다. 아마 이 부분이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음악에 분위기를 많이 태우게 된 건 15년이 넘은 내 방 인테리어와도 관련이 있다.
내 방은 풀색에 가까운 초록색 벽지와 공룡이 오와 열을 맞춘 연노란색 벽지, 기능에 맞춰 구매한 따뜻하고도 촌스러운 이불과 없으면 못 자는 오래된 베개들이 채우고 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내 방이지만 가끔은 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조명과 음악은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오렌지빛 전구색 스탠드를 약하게 켜놓고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면 공룡들은 잠깐 사라지고 나른하고 따뜻한 감성만 남는다. 커피까지 더해지면 더없이 좋다.
올해 초에 동생과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 여행을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조성진 플레이리스트에 빠져있었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몇곡이 있다. 그 중에서도 드뷔시의 달빛을 좋아한다. lune 라는 원어 제목을 그대로 직역하면 그냥 '달'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꼭 '달빛'이라고 번역되는 부분도 좋다. 조성진 이전에 들었던 달빛은 아주 맑고 청량하고 고요한 자장가의 느낌이었다. 잔잔한 호수에 하얀 달이 떨어지는 느낌. 그러나 조성진의 달빛은 처연하다. 맑음을 넘어 가슴이 사르르 울리는 처연함을 안겨준다. 그러면 달빛이 펼쳐진 호수에 마치 닿을 수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인어공주같은 사람이 함께 있는 듯하다. 나에게 클래식을 들으면서 마치 가사가 있는 발라드처럼 감정이 느껴지는 경험을 처음 선사한 곡이라 나는 조성진의 달빛이 좋다.
일본 여행을 떠나던 비행기와 돌아오던 비행기를 모두 조성진 플레이리스트로 채웠다. 그래서 이제 그 음악을 들으면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설레면서 차분한 느낌이 든다. 음악에 기억을 묻히는 건 때로는 위험하지만 일상을 재밌게 만들어 준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명상을 하다 보면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상처를 억누르고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상처를 꺼내어보고 흘려보내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함을 느꼈다. 이 중요성을 알게된 건 또다시 나를 찾아온 무기력 때문이었다.
예전에 쓴 글에서도 그랬지만, 사실 시작에는 큰 이유가 없다. 내가 가려고 하는 방향에서 분명 얻을게 있어보였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선택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하는 착각은, 그 선택의 결과가 안 좋을 때에 선택 당시의 정보력과 결과가 나온 후의 정보력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인지 오류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럴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아야했는데, 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도 그랬다.
마케팅 직무 관련 교육을 듣고 있는데, 7월에 시작할 인턴 업무에 포토샵이 있었다. 배우고는 있었지만 아주 열정적으로 한 것도 아니라서 걱정이 되었다. 나는 주기를 알 수 없지만 빈번하게 무기력을 느끼는 타입인데, 이 무기력의 근원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다.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손가락 까딱 움직이면 되는데 물 먹은 솜 마냥 자꾸 몸이 쳐지는 경험이 꽤 많았다.
삶의 목적에 대해 큰 그림을 잡고, 액션 플랜을 세우면 무기력도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뒤에 남은 것들을 잘 처리했어야 했다. 응어리 진 감정과 나를 돌보지 못한 시간들은 무의식에 스며들어 내가 나아가는 것을 자꾸 가로막는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은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자유는 그저 인정하고 흘려보내고, 자연스럽게 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스트리밍 어플을 켜고 옛날 음악 중에 무엇을 플레이할 지 고르는 내 모습에서 모순을 느꼈다. 옛날 음악은 이렇게 좋아하면서, 예전의 나는 뭐가 그렇게 싫어서 자유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꺼내왔나.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이 두려워 현재를 살지 못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건데 나 혼자 벗어나겠다고 애쓰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에 가려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버릇을 너무 오래 들여왔던 것은 아닌지. '했어야 했는데'와 '해야 돼' 사이에서 핑퐁처럼 튕겨지다가 '하고 싶어'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