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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Jul 30. 2023

S에게

Summer Letter_여름에 쓰는 편지


출근할 때쯤, 점심 먹을 때쯤, 저녁때쯤.


금요일 저녁에는 이 해방감을 같이 느꼈으면.


월요일 아침에는 서로에게 응원 한 마디를.


오늘도 행복했기를.




수년째 거의 매일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 s 안녕!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매일 생존 신고를 한다는 건 달리 말해 누군가 나의 생존을 궁금해한다는 건데, 그것 참 고마운 일이다. 잘 살아 있는지, 잘 존재하는지. 매일 들여다 봐 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행운이다.




퇴근할 때쯤, 고속도로를 타기 전에 롯데 타워가 보여. 우스갯소리로 부산에서도 보인다는 롯데 타워지만, 이 더운 장마철에 출퇴근을 시작한 내게 그 모습을 자주 보여준 적이 없었어.


날이 아주 맑게 갠 날에는 구름과 맞닿은 둥근 끝을 볼 수 있어. 오늘은 솜사탕같이 예쁜 구름들이 엄청나게 많은 맑은 날이었지. 커브를 돌면서 보이는 선명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우와~ 감탄사를 내질렀어. 요 며칠 새 계속 장마로 날씨가 우중충해서 이렇게 선명한 적은 없었거든.


두 번째 편지의 주인공을 너로 정한 후에는, 일상에서 차지하는 네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어. 그래서 오랜만에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네 생각이 났지.




사회생활에 뛰어들기 전에는, 주고받는 안부에 매일의 크고 작은 일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학생'이라는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서로의 일상이 너무 다른 모습을 띄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배려들이 생겨났던 것 같아.


너에게 배우는 건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런 것.

많은 일상을 공유한 사람들에게만 할 수 있는 아주 섬세한 배려.

그 배려를 서운함이나 거리감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믿음과 지지.

내가 절대로 배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너는 배우게 해 줬어.

물리적으로 가까워야만, 자주 봐야만 애정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이런 섬세한 배려가 결국 오래가는 힘이라는 것. 그리고 그 배려들이 얼마나 깊은 애정에서 나오는 건지 알게 해 줬지.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배려는 이를테면,

지나간 일기 예보 같은 것.


서로를 대할 때는 맑게 갠 날만 보여주지만 지나간 날들에는 어둡고 우중충한 날들도 있었다고.

렇지만 지금은 다시 선명하게 '생존'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배려를 받을 때면, 또 하게 될 때면, 그 우중충한 날을 버티는 힘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잘 생존하고 있다고 알리고 싶어서, 맑게 갠 날이 아주 많았다고, 서로를 안심시키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애정을 쏟을 때 나도 모르게 점심은 먹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궁금해져. 아마 이건 너에게서 온 습관 아닐까? 텅텅 비어있던 네 자취방 냉장고가, 술만 마시면 자꾸 운다는 네 바뀐 주사가,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


너는 네가 단단해진 거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는 너는 예전부터 단단했어. 주변을 위해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이 얼마나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귀에 박히도록 '남을 배려해라'라고 말해도 바뀌지 않던 내 이기심은 어쩌면 너를 거울삼아 조금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말인데, 이 편지를 읽는 오늘만큼은 너를 마음껏 칭찬했으면 좋겠다.

너는 너무 멋진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고, 이 삶을 잘 생존해내려고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너를 마음껏 연민했으면 좋겠다.

애쓰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면, 너무 고생했다고 다독여주었으면 좋겠다.

창피함에 숨어 내가 하지 못한 응원과 지지를,

지금까지 네게 받아 온 그 마음을,

오늘 하루는 아무에게도 쓰지 않고 너만을 위해서 썼으면 좋겠다.


나무같이 단단하고 탄탄한 너지만,

그렇게 단단해지기 위해서 너를 스쳐갔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스친 시간에 맞물렸을 상처들을 생각하면,

나는 존재조차 모르는 그 시간들이 안타까워.

지나가듯 내게 꺼내놓은 우중충한 날 하나는 결코 '가장 우중충한 날'은 아니었을 걸 알기에 더욱,

오늘은 그런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너와 대화를 하고 나면 마치 숲에서 같이 자라는 나무들처럼,


우와 넌 그만큼 컸구나, 잘했다.

너도 그만큼 컸네, 고생했다.

비도 맞고 눈도 맞았지만,

결국 우리는 자라고 있나 봐.

앞으로도 같이 잘 자라 보자.


한 계절 한 계절을 잘 버텨냈다며 살아갈 힘을 또 얻는 것 같아.




매일 조금씩 너의 행복을 빈다.

오늘은 너를 속상하게 만든 사람이 없기를,

오늘은 밥을 급히 먹지 않고 조금이라도 맛있다 느꼈기를.


다음번 얼굴을 보기 전까지,

맑게 갠 날이 우중충한 날보다 더 많기를.





아주 맑은 7월의 어느 날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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