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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Feb 22. 2024

엄마가 오셨다

  산골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하는 동생과 나를 보러 결국 엄마가 오셨다. 올해 여든넷의 엄마. 남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언니를 대동하여 비 오는 오전 11시경 산골 마당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보는 거냐. 일 년은 넘은 거 같다."

  차에서 내리며 엄마가 말했다. 작년 추석 때 찾아뵈었으니 오 개월여 만인데 엄마 마음 시간은 달랐나 보았다. 지난 설날에 부모님 댁에 가려다 차에 문제가 생겨 방문을 늦추었다. 이제 차를 고쳤기에 찾아뵈려 하던 차, 당신이 대신 오겠다고 했다. 차를 몬 지 십수 년이 넘어도 늘 서툴기만 한 딸의 운전 솜씨도, 노후된 차도 미덥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긴 세월 아버지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다. 하루라도 집을 떠나 여행하는 기분으로 산골까지 전원 풍경을 보며 오시면 좋을 듯했다.

   

  아버지는 오래전 전립선암 수술을 하신 뒤 기력이 점점 약해졌다. 십여 년 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시기엔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도 했다. 그때 아버지가 살아난 건 오직 엄마의 정성이라고 우리 네 남매는 믿고 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엄마의 손길 없이는 일상생활이 가능치 않게 되었다. 80세를 넘길 수 있을까 염려스럽던 아버지는 이제 90세를 앞두고 있다. 그야말로 엄마의 한결같은 정성이 불러온 기적과도 같다. 하지만 긴 간병은 엄마의 건강도 약화시켰고 우울증도 불러왔다.     

  "사는 게 뭐 이러니." 가끔 전화로 호소하던 엄마가 급기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한다는 소식에 눈물이 나왔다. 마음만 울컥했을 뿐 엄마를 적극적으로 돕지도 못했다. "한동안 여기와 계시면 좋겠는데." 권유하는 정도가 다였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따금 산골에 오셔서 사나흘 정도 짧은 휴식을 가졌지만, 이젠 그조차도 힘들어졌다. 겨우 시간 내어 당일로 다녀가실 뿐이다.

 

  "어마 얘, 눈이 내린다."

  모처럼 오신 엄마를 위해 점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그새 눈으로 변했다. 산골 겨울엔 수시로 눈이 내리고 그때마다 마법의 세상이 펼쳐진다.

  "어마 저 봐라. 함박눈이다."

  창가로 다가간 엄마가 다시 말했다. 기온이 영상에 가까운 푸근한 날씨. 눈은 점점 부풀어 큼직한 눈송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천지가 하얗게 변해갔다. 급기야 엄마는 눈을 직접 맞으러 마당으로 나갔다. 춥다고 말리는 아들의 말도 듣지 않았다. 나는 흐뭇해서 지켜보았다. 하필 엄마 오시는 날 비가 오나, 반갑지 않더니 눈은 어쩐지 자랑스러웠다. 이곳만의 특별한 선물을 엄마께 드리는 기분이었다. 서정이 남달리 풍부한 엄마. 책 읽기와 노래를 즐기고 멋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고 언젠가 내게 당신의 꿈을 말한 적도 있었다. 한 곳에 머물기보단 다양한 세상을 접하며 살기 원했는데, 실상은 한 가정을 지키며 수수한 생활을 꾸려왔다.

    

  수수한 가운데 그래도 엄마는 당신의 개성을 살릴 줄 알았다. 재주가 많아 무엇을 하든 보통 이상의 성과를 내었다. 취미로 배운 검무에 소질이 발현되어 무려 예술의 전당에서 서너 차례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또 운동 삼아 오랫동안 수영을 하여 일반부 시합에 나가 우승도 여러 차례 했다. 접영을 할 때의 엄마는 그야말로 물 찬 제비, 아니 나비같이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창의력과 추진력도 있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네 남매가 어릴 땐 집안 소품이며 아이들 옷을 직접 만드는가 하면, 일부는 판매도 하였다. 중년이 되어 여유 시간이 생기자 지역사회 다양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버지와 네 남매는 다소 내향적이라 어디에서든 가만히 머무는 걸 좋아했기에 엄마는 좀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 모두 그런 엄마를 인정하고 지지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 즐길 줄 알고 멋을 아는 엄마.

  

  오랜만의 이번 외출에도 엄마는 한껏 멋을 내고 오셨다. 빨간 스웨터에 황금색 털코트.

  "난 너희들 만날 때 제일 신경 써. 그래야 너희 마음이 좋지."

  연세가 드신 만큼 몸이 편치 않지만 우리와 만나는 시간만큼은 아픈 것도 잊는다 했다. 요즘엔 귀까지 어두워져 대화 중 자식들 입을 가만 쳐다보다가 누가 웃으면 따라 웃기부터 하신다. 당신 몸에서 나온 아이들을 오붓이 눈앞에 두고 그저 흐뭇한 시간인 것이다.     


  "아버지 정도면 착한 환자야. 요새는 가끔 내 손을 끌어다 잡고는 '이뻐'라고 말하기도 해."     

  엄마의 말엔 웃음을 그치고 다들 좀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되었다. 내 경우 그 감정은 개인적인 것보다는 존재론적인 것에 가까웠다. 오래 묵은 답 없는 물음, 생이 무엇일까 싶은. 상대와의 소통이 대화의 기본이라면,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릴 땐 휴일에나 오는 아버지가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사춘기 무렵부터는 늘 좀 어려워 숨고 싶게 만드는 존재였다. 성장한 뒤엔 분석 혹은 이해 대상이 되었다. 내 성격에 미루어 아버지를 분석해 보기도 했고, 반대로 아버지를 통해 나를 이해해 보려고도 했다. 아버지 특유의 예민함에서 매사 철두철미한 대비와 책임감이 나온 것이었을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앞서고 위태로운 것일까, 하는. 아마도 대대로 내림했을, 아버지 DNA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땐 차라리 안도하였다. 별들의 운행처럼 애초에 경로가 정해져 있던 거구나, 하고.    


  워낙 과묵한 아버지라 대화 같은 게 없었다 해도, 아버지 나름의 자상함은 느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손엔 자주 아이들 먹을 것이 들려 있었고, 학용품이 충분한지 늘 살펴보곤 하셨다. 특히 묶음으로 된 낱장 갱지를 어찌나 자주 사다 주었는지 늘 묵은 신문지처럼 책상 여러 곳에 쌓여 있었다. 그 종이에 뭐든지 마음껏 쓰라고 했다. 당신이 어릴 땐 종이가 귀해 땅바닥에 쓰고 지웠다는 얘기를 한  번쯤은 들은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한 건 어쩌면 그 종이의 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아버지가 해외 근무를 오 년인가 했는데, 그때 좀 수줍어하며 아버지에게 편지를 몇 차례인가 보냈다. 네 남매 중 유일하게 편지한 자식이 아니었나 싶다. 답장은 없었지만 실망하지 않았고, 그렇게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나는 소중한 기억으로 여긴다.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설경이 아름다워질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가족들이 길을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눈은 바닥에 닿으면서 녹고 있어 도로 사정이 그리 나쁠 것 같진 않았다.

  "너희도 이젠 도시로 나와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떠날 채비를 하며 말했다.

  "원래 계획대로 다들 여기 들어와 살았음 좋았잖아."

  동생이 말했다. 설명하자면 긴 얘기다. 십여 년 전 네 남매는 훗날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모여 살자고 이곳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셋째인 동생과 둘째인 내가 먼저 과감히 집을 지어 산골 생활을 시작했다. 그 사이 남동생네는 오누이가 태어나 초등생으로 자라났고, 언니네는 대학생이었던 두 딸이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산골에 들어올 시기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그 바람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도 학교도 갖춰져 있지 않은 이곳에 들어와 살기 결국 어렵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이젠 동생과 내게 다시 도시로 와서 함께 살자고 권하고 있다.

  "우린 여기가 좋아요. 생활이 좀 불편해도 마음이 편하니까."

  엄마를 배웅하며 내가 말했다. 엄마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가 웃어 주었다.

  "나도 그게 좋아. 너희 좋을 대로 사는 거."

 엄마와 언니, 남동생이 탄 차가 서서히 움직여 비탈길을 내려갔다. 나는 눈이 펄펄 내리는 마당 끝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얀 겨울, 아름다운 오늘의 한 때.

 



엄마와 언니 남동생이 저마다 구호품 수준으로 온갖 선물을  가져왔다.
내가 점심 준비하는 동안 빌려갈 책 고르는 엄마. 독서량이 상당하시다.
엄마가 좋아하는 아보카도 샐러드와 크로크무슈
식사 후 커피 타임. 남동생, 언니, 엄마, 여동생.
두 번째 식사로 준비한 낫또 샐러드 밥인데...
눈 때문에 서둘러 가셔야 해서 포장해 드렸다. 낫또는 병아리콩을 삶아 24시간 밥솥에 발효시켜 만들었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바이
엄마 건강하세요.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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