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할 일은 많다. 4월이 그렇다. 때를 놓치면 서운한 것들이 한꺼번에 떼 지어 찾아온다. 날마다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해야 그나마 덜 놓친다. 밭일도 해야 하고 모종도 챙겨야 하고 나물도 캐야 하고 꽃도 봐야 하고. 우선순위부터 하자면 꽃구경이지 않을까.
올봄 흐름은 유난히 빠르게 느껴진다.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꽃이 피는가 싶더니 이내 벚꽃과 조팝나무꽃이 뒤따랐다. 마당 자두꽃과 앵두꽃도 한꺼번에 피었고 이어복숭아꽃도 만개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진분홍빛이 어찌나 선연한지바라보고 있으면 아릿하다. 무엇이 아릿한지 헤아려볼 것 없이그저 꽃 질 때까지 아릿하게 바라보고만 싶은. 순간의 발현은 영원과 맺혀 있는 것인가 싶게 찰나의 깊이에 빠지지만, 집중은 힘들다.
"밭일이 우선이지."
동생 순서는 나와 다르다. 동생 기준은 효율성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성과가 확실한 것. 꽃구경은 따로 하는 게 아니란다. 그 말도 맞다.밭일을 하면서도 나물을 캐면서도 할 수 있는 게 꽃구경이다.아니 내 경우엔 꽃구경 삼아 밭일을 하고 나물을 캔다고도 할 수 있겠다. 허리를 굽혀도 허리를 펴도 눈길 닿는 곳마다 보이는 새로운 꽃들. 언덕배기에 노란 양지꽃이 수놓듯 사뿐히 놓였는가 하면 마당 곳곳엔 제비꽃, 개별꽃, 민들레가 어른거린다.
일 다 미루고 산책을 가도 안 될 건 없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종들을 보면 마음이 바뀐다.얼른 밭에다 줄 맞춰 단단히 심어놓고 싶다. 부엽토를 걷어와이랑을 만들고웃자란 모종부터 심는다. 그 와중산나물도 틈틈이 해서 저장해 놓는다. 밭농사보다 실속 있기로는 주변에 저절로 나는 산야초를 거두는 일아닌가. 심고 돌보지 않아도 저 나름 적절한 환경에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산야초들. 쑥과 냉이는 어디에나 보이고 냇가 머위도 그득해졌다. 나무순들도 며칠새 눈에 띄게 자랐다. 홑잎나물이라 부르는 화살나무순과 고추나무순. 홑잎나물은 잎이 돋는가 싶으면 어느새 순을 딸 시기가 지나버린다. 두릅순도 한차례 땄는데 연이어 돋고 있어 계속 시선을 끈다.
두릅과 머위를 데쳐 소금 몇 꼬집 넣어 참기름에 무친다. 냉이도 데쳐 역시 소금과 참기름으로 맛을 낸다. 두릅과 머위 데친 물은 밭에 거름 돼라 붓고, 냉이 데친 물은 밥 지을 때 쓴다. 냉이 향이 밴 향긋한 밥으론 김밥을 만다.
"봄나들이 김밥이야."
동생에게 말했더니
"우리 어디가?"
묻는다. 꼭 어딜 가야 나들이인가. 사는 자체가 소풍이라는데. 꽃 피고 할 일 많은 4월이 꽃처럼 아릿하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