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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Oct 16. 2024

외식이 필요해

  "이제부턴 가끔 외식을 하자."

  내가 제안했다.

  동생과 10년 남짓 산골에 동안 한 번도 둘이서 외식을 한 적이 없다. 과연 그럴까, 나도 믿기지 않는다. 가만, 아닐 수도 있다. 가족이 집에 왔을 때 근처 음식점을 찾아간 적이 있었네. 엄마와 냉면집 두 번, 언니와 중국집 한 번. 읍내 식당이야 뻔해서 기억하기 어렵지 않다. , 또 있다. 한 해 두어 번 가족 모임 때 더러 부모님 댁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까 특별한 경우 외식을 한 적은 있. 하지만 동생과 나, 둘만의 산골 일상에서 외식 한 적 없.


  "일로?"

  동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는 외식을 좋아하지 않다. 도시에 살 때 동생은 자주 외식을 했지만 나는 거의 집밥만 먹었다. 생과 지금 한 지붕 아래 두 집으로 나눠 살듯이, 산골에 오기 전에도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서 몇 년간 이웃으로 산 적이 있었다. 동생 경우 밥하기 귀찮아서 외식을 했다면 나는 반대였다. 외식을 하기 위해 옷 갈아입고 메뉴를 고르고 식당을 찾는 과정이 오히려 더 귀찮았다. 그냥 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편했. 더구나 시간과 돈도 아낄 수 있으니.

  "냥 그러고 싶네."

  내가 말했다. 분전환이나 일탈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곳, 이왕이면 타인의 취향이 담긴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을 고 싶었다. 쓰고 보니 그게 일탈이고 기분전환인 건가. 그러면 그냥 내 부엌이 아닌 곳에서 동생과 함께 있는 순간을 즐기고 싶은 것이라고 해두자. 어떤 책임이나 수고 없이 홀가분하게.


  동생은 이제 외식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생에겐 내 부엌이 있으니까. 가 해주는 음식을 동생은 좋아한다. 위생과 재료도 믿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제 입맛과 기분에 맞다고. 내가 해 준 첫 요리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자신이 초등학 때였다고 했다. 마도 5, 6학년 정도. 다섯 살 위 나는 그렇다면 고등학 때였다. 엄마는 외출한 상태였고 내가 음식을 차려주었다고 한다.  기억엔 없는 그 요리는 오므라이스 모양이다. 밥을 채소와 볶고 달걀얇게 부쳐 밥을 덮은 뒤 토마토케첩으로 꽃을 그려주었다 했다. 그 옆엔 으깬 감자를 동그란 아이스크림처럼 담아 마요네즈를 가늘게 뿌려주었다고.


  "나 그때 좀 놀랐잖아. 언니가 다르게 보이더라."

  동생이 나를 보며 말했다.

  "놀랄 정도로 맛이 있었어?"

  내가 은근하게 물었다. 오래전 만들어 준 음식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이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도 있었지만 예뻐서 놀랐지."

  그렇게 말한 동생은 이어  덧붙였다. 예쁜 것보다는 음식에 그림을 그린다는 발상이  놀라웠 거라고. 그림을 망치고 싶지 않아 음식손을 못 대고 있자 왜 안 먹냐고 내가 채근했다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보기 좋게 플레이팅 한 음식이 흔하지만 그땐 드물었기에 인상에 깊이 남았던 모양이다.


  며칠 뒤 외식을 하러 차를 몰고 나갔다. 검색을 했더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피자와 파스타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도로에서 벗어좁은 산길제법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도 지역 검색 상위에 있었다. 숨은 맛집인 모양이었다. 에 둘러싸인 유럽 산장 같은 분위기였다. 늘 보던 숲인데도 또 다른 숲 풍경이 좋았다. 익숙하면서도  풍경. 롯이 둘만 생활하는 에선 조금만 낯선 것이 끼어들어도 화제가 풍부해진다. 식당 테라스에 들어서면서부터 닥 재질과 벽체 마감 처리, 문 색깔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되는가 하면, 식당 내부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대해 소곤거리게 된다. 장 분위기답게 실내는 거의 나무 재질로 되어 있었다. 의자와 탁자는 물론 천과 바닥도.


  우리는 창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다. 주문은 테이블마다 놓인 키오스크로 했다. 도시에선 이미 일상화되었다는 키오스크 처음 경험해 보았다. 사람을 직접 대하지 않는 주문 방식이 편했다. 시 뒤 음식이 나왔다. 동생은 마르가리타 피자, 나는 버섯 피자. 화덕구이는 아니었지만 둘 다 근사했다. 발효된 밀반죽과 치즈가 바싹 구워지며 풍기는  어찌나 좋던지.  기분 족되었다. 조화로운 공간에서 즐기는 특별한 한순간.


  간은 그저 지나가는 게 아니다. 낯선 숲의 식당에 오는 동안 마주쳤던 길가 풍경들과 실내 격자창에서 흘러들어온 햇빛, 음식을 내 온 요리사의 조용한 몸짓, 이웃 테이블에 식사 중인 젊은 남녀의 웃음과 말소리 같은 것을 아마도 오래도록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외식의 필요성은 그런 게 아닐까. 현실을 잠시 접어두고 즐기는 영화관람 같은. 마주 앉은 동생과  순간 함께것들을 나누며 소곤거 때가 인상 깊은 장면이 되어 주는 것. 오래전 내가 만들어 준 첫 음식을 동생이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숲속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피자


 외식을 온 다음 날은 마당 한쪽을 정리했다. 마당에 엉긴 풀과 잔디엔 가을빛이 들고 있었다. 낯선 곳에 잠시 다녀온 것만으로 새삼 내 공간이 또 새로웠다. 낙엽이 쌓이고 있는 산기슭, 마당 가에 핀 구절초, 우거진 풀숲을 뚫고 가늘가늘 올라온 코스모스, 잎이 불그레 물들어 가는 복숭아나무, 포도 하우스를 타고 올라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작두콩 넝쿨, 알알이 묵직한 대추를 매달고 늘어져 있는 대추나무. 마당 일을 마치며 우거질 대로 우거진 자소엽을 거두고 텃밭에서 가지와 애호박을 땄다. 속이 단단한 가을 가지와 애호박. 그것으로 그날 저녁 동생에게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오래전 만들어 준 처럼 꽃 한 송이를 올려.  


동생에게 재현해 준 오므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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