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일으켜 침대 등받이에 기대던나는 깜짝 놀랐다. 오월 중순쯤 갖다 드린 건데 그걸 지금에야 드시다니. 날짜를 짚어보니보름이나 지났다.
"어머,안 상했어요?"
"아니 말짱해. 냉장고 깊숙이 둔 거라 괜찮아. 들깨가루를 더 넣어 끓였더니 아주 맛있어. 쑥 냄새가 어째 이래 진하다니."
아버지가 지금 그 쑥국에 밥 말아 맛있게 드시고 있다고, 엄마가 말을 이었다. 그러더니 전화를 아버지께 가져가 대어 드리는 모양이었다."둘째 딸이잖아. 이거가져온 딸. 이름 불러 봐." 하며내 이름을또박또박 말했다.그러자 갑자기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두 번이나큰 소리로 또렷이.
새벽에 눈을 떴을 때 그 음성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부르던 아버지 음성.뭐라 말할 수 없던 그 순간의 감정도 일깨워졌다. 아버지가 건강하다면 그저 반갑고 좋았을 것이다. 인지 기능이 많이 약해진 아버지는 지난 오월 찾아뵈었을 때 나를 모르는 눈치였다. 간밤에 내 이름도 책을 읽듯 또박또박 두 번 말했을 뿐 "네. 저예요. 쑥국 드시는 거예요?" 내가 얼른 말을 붙였을 때더 이상 다른 말은 없었다. "얘 거긴 아직 쑥 많이 나지? 단오 전까진 약효 좋으니 부지런히 해서 먹어라." 엄마가 대신 말을 잇고 있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이어진 엄마 말에 짧은 대답을 한두 마디 하다 끊게 되었다. 잘 시간엔 말이 길게 나와 주지 않는다. 더구나 낮에 일을 좀 넘치게 했다. 마당이며 길섶 풀정리를 하다 내친김에 감자를 심은아래밭과 딸기밭 너머 둔덕까지 미친 듯 풀베기를 했다. 일이 좀 되는 날이었다. 평소 꾸준히 손질을 하면 좋으련만 꼭 몰아서 일을 하고 뻗어버리게 된다. 어찌나 피곤한지 날이 어둡기도 전에 커튼치고 누웠다가 받은 전화였다.
그래도 밖이 어둑했으니 밤 여덟 시는 넘었을 텐데 왜 늦은 시각 저녁을 드셨을까.오래된 쑥국을 먹고 탈은 안 났으려나.물을 추가해 끓일 수 있도록저장용으로 진하게 만들어서 괜찮을 것 같긴 했다. 새벽 시간은 묘하다. 생각이자막처럼 흘러가고 나는 그걸 읽는다. 쑥은 보약이니 보이는 대로 먹으라고 엄마는 늘 딸들에게 말했다.즙을 내어 아침 공복에 한 컵씩 마시면 속도 편안해진다고.어릴 때부터 나는 위장이 좀 민감했다. 푸른 병 속에 든 하얀 암포젤엠을 자주 숟가락에 따라 마셨다. 커서는알약으로 된제산제를 상비해야 안심이 되었다. 산골에 온 뒤 봄이면 돋는 쑥으로 쑥즙을 내어 빈 속에 마셨다. 효과가 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제산제는 끊게 되었다.
새벽 시간은 묘하다. 흐름이 제멋대로다. 어린 날의 어느 순간이었다가 중년 어느 하루였다가. 커튼 너머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되지 않아 깨어났는데다섯 시가 다되었다.느린 건가 빠른 건가. 갑자기 시작된 새소리가 어둠을 빠르게 걷어 내고 있었다. 명랑하게 들리는 작은 새들 소리. 그 사이로 깊은 산이 숨을 쉬는 듯 차분한 뻐꾸기 소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