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유월엔 밤꽃이 유난했다. 어깨걸이 하듯 겹쳐진 낮은 산마다 쌀뜨물 같은 밤꽃이 흥건했다. 이제 시월 아침 길을 나서니 아람 든 밤송이들이 길에 깔려 있다. 밤새 누가 함지박 가득 담아와 일부러 쏟아 놓은 것처럼.
그랬다. 밤꽃이 필 때부터 올핸 밤이 많겠네 싶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주머니 가득 밤을 주워온다. 집 울타리 안에 있는 야산이며 길가 비탈에 밤나무가 도대체 몇 그루나 되는지 세어볼 수도 없이, 가을이면 주변에 오직 밤나무만 가득한 것 같다. 숲에 떨어진 밤은 야생 먹이로 두고 길에 떨어진 밤만 주워와도 넘친다. 삶아서도 먹고 생밤으로도 먹고.
"밤이 왜 밤일까."
"밤처럼 어둑한 색이라 그런 거 아닐까."
"속은 하얗잖아."
"밤엔 달이 뜨니까. 어둑한 밤 속에 뽀얀 달빛이 차는 거지."
동생과 식탁에 앉아 밤 껍질을 까고 있으면 이런 대화가 오간다. 싱거운 말들이 오가면서 밤이 왜 밤일까, 일순 궁금해진다. 스마트폰 검색창에 어두운 밤(夜)과 열매 밤(栗) 어원을 알고 싶다고 썼다.
어둠이 내린 시간을 뜻하는 밤(夜)은 중세국어에서 ᄇᆞᆷ(bam)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어원을 찾자면 고대 알타이어(한국어와 먼 친척이라 여겨지는 언어들)에서 ‘어두움’을 뜻하는 어근 pam- 계열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몽골어 bam — 도 ‘어둠’, ‘밤’을 뜻하고, 퉁구스어 pama —도 ‘저녁 무렵’이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설명이다.
열매 밤(栗)의 ‘밤’ 역시 중세국어에서 ᄇᆞᆷ(bam)으로 표기된 순우리말로, 지금과 다르지 않게 쓰였다 한다. 어원에 대한 설명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밤(夜)’과 밤(栗)은 발음이 같고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로 서로 의미상 관련은 없다는 것인데, 어쩐지 서로를 비추는 듯 느껴진다. 밤이 아람 들수록 밤이 깊어진다고 여기고 싶은 것처럼.
열매 밤은 어느새 끝물에 이르렀다. 단단하게 여문 그 끝을 이어받아 이제 어두운 밤이 무르익을 차례다. 헐거운 것들을 조이듯 허공도 찬공기로 가득해진다. 계절의 순환은 그렇게 여문 것을 풀고 새롭게 속을 채우며 겹겹 산처럼 어깨를 이어 흘러간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행렬의 어느 갈피, 철새 무리가 지나간다. 끼룩끼룩 멀리서 다가오는 낯선 소리에 고개를 젖혀보면 언뜻 나타나는 긴 대열. 와이자 혹은 브이자, 잎맥 같은 무늬를 허공에 그리며 나아가는 대자연의 신비.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방향이 궁금한 건 아니다. 시작도 알 수 없이 언제까지라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그 물결에 잠시 마음이 함께 일렁였을 뿐.
그렇게 밤이 익고 밤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