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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모험가 Apr 28. 2021

1. 이직

어쩌다 보니 이직

"E (내 이름),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을래?"


2019년 에너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던 내게 당시 클라이언트 회사에 전무(SVP)가 갑작스럽게 포지션을 제안했다.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도 잘 몰랐다.


"갑자기? 왜? 어떤 포지션? 롤이 뭔데?" 컨설턴트임에도 너무 두서없이 질문을 했다.

"우리 Directorate에 전략 팀장 있잖아. 네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봐."

"음... 너무 갑작스러운데.. 한 번 생각해볼게."


말은 이렇게 했어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이 클라이언트와는 벌써 3번째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봉 수준이나 워라벨에 대해서는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어차피 컨설팅에서 파트너까지 할 생각도 없었다. 내가 영업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회사로 엑싯한다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 지금 프로젝트하는 회사에서 자기 회사로 오라는 데... 고민 중이야."

"너는 무슨 회사를 계속 옮기냐. 좀 진득하게 안 다니냐?"

"나 MBA 나와서 회사 옮긴 적 없는데?"

"MBA 전에 몇 번이나 옮겼잖아."

"아니 군대 가느라 휴직하고 군대 간 거고, 군대 갔다가 한국에 있을라고 (당시 여친 때문에) 한국 회사 다닌 거고, 그리고 그 회사는 MBA 때문에 그만둔 건데, 무슨 소리야?"

"나 때는 말이야............."


내 말은 어차피 안 들으신다. 알면서도 왜 물어봤는지는 모른다. 그냥 부모님한테 알려주고 싶었고, 또 아빠는 그런 나에게 뭔가 당신 얘기하는 걸 좋아하시기 때문에 물어봤는지도 모른다.


"아 몰라.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엄마 걱정하니까 엄마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장단점은 확실했다. 결코 가슴이 뛰는 삶, 가슴이 뛰는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그런 결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일하는 그저 평범한 삶. 하지만, 컨설팅을 몇 년 하면서 이미 지칠 만큼 지친 상황이었다. 주말에 비행기 타고 집에 가고 다시 일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는 삶을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당시 나에게는 커리어, 그리고 가슴이 뛰는 삶보다는 워라벨이 너무 중요했다.


다음 날, 출근길에 같은 층에 인사 담당자를 만났다.


"네가 E 맞지? 얘기 많이 들었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래?"

"아, 뭔지 알 것 같다. 우리 팀원들이 알면 안 되니까 우리 층은 좀 그렇고, 오후에 17층에서 커피 한 잔 하자."


그리고 오후에 17층에서 커피를 했다. 아주 단도직입적이었다.


"E, 우리 회사 와라. 원하는 조건이 뭐냐?"

"사실 뭐 특별한 거 없어. 지금 프로젝트 팀장이니까 비슷한 타이틀이었으면 좋겠고. 세후 연봉은 좀 올랐으면 좋겠고. 알겠지만 나 Director 승진 직전이 자나. 그 기준으로 연봉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당연히 조금 부풀리긴 했다. Director 달려면 2년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연봉 협상을 위해 그냥 그렇게 얘기했다.


"그래. 이번 주까지 패키지 줄게.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얘기해."


그리고 받은 패키지는 사실 내 예상보다 좋았다. 특히 세후로 생각하면 꽤 높은 연봉 상승이었다.


"솔직히 얘기할게. 생각보다 좋은 조건이다. 고마워. 언제까지 결정해야 돼?"

"지금?"

"이번 주까지만 생각할 시간을 줘."


사실 생각이고 뭐고 별로 할 필요가 없었다. 커리어만 놓고 생각하면 좋은 결정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는 너무 정착이 하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런던을 떠나서 조금이라도 한국에 가깝고 싶었다.


이렇게 컨설팅과는 작별을 고하고, 평범한 회사에서 새로운 챕터를 시작했다.




최근 홍정욱 에세이를 읽었다. 어찌 보면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가 홍정욱 씨의 7막 7장이다. 7막 7장 덕분에 미국 유학의 꿈을 키우고,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물론 하버드 대학교를 가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의 고생으로 겨우겨우 대학원까지 끝마칠 수 있었다.


홍적욱 씨는 아직까지도 가슴이 뛰는 삶, 직업, 사명을 찾고 계셨다. 이미 50이 넘으셨는데도 (그렇게는 물론 안보이시지만,) 그런 삶을 사신 다는 건 정말 존경스럽다. 30대 중반에 나는 왜 이렇게 벌써 지쳤는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조금 한심할 때도 있다.


아직도 인생에 답을 모르겠다. 예전에는 성공이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행복이 커리어와 사명에서만 찾는 건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제 특별히 답을 찾기 위해 노력도 안 하려고 한다. 비록 답을 찾을 수 없더라도, 이 순간순간 모든 삶이 답을 찾는 과정이고 기적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믿어야지. 무슨 기적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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