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lking Disciple Oct 17. 2019

명작의 끝없는 여정 Part.1

우리는 모든 명작들의 독특한 스타일과 상징적인 이미지에 매료되며 그 작품들을 눈 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백 년 간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명작들의 존재와 원본의 가치를 위협하는 여러 사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By 정예록


카렐 파브리티어스, 골드핀치, 1654년 작,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헤이그

문학, 예술, 음악, 그리고 평소에 즐겨먹는 디저트와 한잔의 커피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 미술관, 극장, 무대, 재즈바, 그리고 카페들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예술적 감각과 문화적 감성은 소멸될 것이고 뚜렷한 색깔이나 특징 없이 자아가 결여된 상태로 의미 없는 공간 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도, 시카고 미술관의 반 고흐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사치도 모두 비현실적인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또한 카네기홀에서 들려오는 멋진 오케스트라 연주도 감상할 수 없을 것이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결국 과거의 한 위대한 제국의 유물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라이프스타일이 없는 삶, 즉 우리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요소들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애초부터 예술과 문화의 존재 조차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예술, 문학, 음악과 그 외의 예술적 요소들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과 더불어 모든 창작물의 진위성과 존재가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행위들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결정한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닌 인류의 책임이자 권리다. 이를 통해 후세에게 그 가치를 물려주는 과업으로 순조롭게 전승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못하다. 빛이 있으면 언제나 그림자가 그 뒤에 존재하는 법이다. 예술이 다양한 문명의 시대를 거치며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듯이 위작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예술과 그 노선을 같이해왔다. 다른 자산들과는 달리 아이러니하게 지금까지도 예술 작품에 대한 보호와 보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저명한 작가인 도나 타트는 2013년 출간된 자신의 작품인 ‘골드핀치’에서 명작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에 대한 차별화된 소재를 통해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녀의 소설은 독자들로부터 즉각적인 호평을 받았고,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주인공인 테오 데커의 거친 삶을 통해 세계적인 화가였던 렘브란트의 애제자이자 델프트 화약공장의 참담한 폭발사고로 인해 겨우 32세에 유명을 달리한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세대를 이끌었던 화가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유작인 ‘골드핀치’의 기나긴 여정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골드핀치’는 폭발 사고 당시 파괴되지 않고 추후 복원된 파브리티우스의 몇 안 되는 그림 중 하나이다. 실제로 도난당한 적은 없지만,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골드핀치’는 폭발 속에서 건져진 후 여러 명의 수집가들 사이에서 거래되다가 방황 끝에 결국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의 영구적인 소장품으로 구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도나 타트는 이 그림의 쉼 없는 여정을 위작 화가와 암거래시장의 딜러로 전전하는 테오 데커의 여행 동반자이자 부적으로 표현하며 네덜란드 걸작의 가혹한 운명을 실감 나게 묘사하였다. 이 소설은 끝없는 혼란과 반전으로 가득 찬 주인공과 골드핀치의 이야기를 통해 미술 시장의 어두운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다양한 반전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며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를 통해 독자들을 짜릿한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였다. 글과 명작의 차별화된 위대함은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하고 그 가치들이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도나 타트는 사랑과 일이라는 두 개의 핵심 키워드가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중요한 수단과 요소가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소설 ‘골드핀치’가 서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을 당시, 독자들은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소설의 소재가 된 ‘골드핀치’ 작품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열망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이를 통해 실제 그림과 소설의 서술적인 텍스트 그리고 생생한 이미지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하였다. 그 결과, 골드핀치 전시회가 열렸던 뉴욕의 프릭 미술관에는 2013년 한 해에만 총 25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몰렸다. 독자들은 탁월한 사실주의적 묘사와 매혹적인 줄거리에 매료되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골드핀치는 사람들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열정을 되살렸다. 심지어 ‘골드핀치’의 관람객 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또 다른 네덜란드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넘어서기도 했다. 시대를 초월한 명작의 핵심은 동일하다. 바로 획기적인 기술과 표현으로 세대를 관통하는 세련된 탁월함이다.


골드핀치는 현대인들, 특히 중장년층들이 주인공인 테오의 삶의 관점에 공감함으로써 그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문화생활의 즐거움에 다시 빠져들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과 문화가 전달하는 이야기의 힘이다. 특히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겐 잠시라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골드핀치라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명작이 지금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세기의 명작들은 신중하지만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을 젊음의 샘으로 이끌어 잃어버렸던 상상력의 세계를 다시금 되살려준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는 결국 고귀한 명작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명작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파브리티우스의 스승이었던 렘브란트와 파브리티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베르메르를 연결시키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시대의 화려한 역사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골드핀치’는 붓끝으로 그림을 그리는 렘브란트의 기법을 연상시키고,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역시 두꺼운 질감과 밝은 색 바탕에 응집력 있는 조명 효과를 자주 사용하는 파브리티우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극사실주의적 화풍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카렐 파브리티어스의 자화상,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출처: Wikipedia


우리는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미술관이나 온라인에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술관은 현미경과 엑스레이 기술을 통해 폐허에서 건져 올린 골드핀치를 복원할 수 있었다. 또한 작품의 높은 가치를 고려하여, 더 많은 검사와 분석을 위해 CT 스캔을 적용한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는 보통 일반적이거나 다양한 주제로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이 있고, 때로는 감탄을 때로는 해석이 필요한 난해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단 하나의 작품 전시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각각의 작품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차별화한다. 관람객들은 현장에 전시된 것만 눈으로 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작품들을 만든 예술가의 치열한 삶을 떠올리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는 작품을 보고 관찰하며 작품이 주는 의미나 해석을 곱씹을 뿐,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된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지레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세계적인 명작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예술 작품의 유통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특히 위작이 많았던 피카소, 렘브란트, 모네와 같은 걸작품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미술품 위조, 불법거래, 그리고 잦은 미술품 경매 스캔들로 인해 유명한 작품일수록 이러한 진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도나 타트의 ‘골드핀치’가 올 가을에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다. 소설이 출판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800페이지에 가까운 스토리가 어떻게 영화로 표현될지 이미 독자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시네마콘의 시사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골드핀치 예고편은 소설 속의 여러 장면들을 화면 속에서 생생하게 담아내며 수많은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고 탁월한 원작 소설의 내용을 스크린으로 매끄럽게 잘 옮겼다는 평을 받으며 소설의 영화화에 대한 편견과 우려를 불식시켰다. 영화 골드핀치는 지난 5년간 미술품 위조 산업이 어떻게 진화해왔고, 미술업계가 고질적인 위조 범죄에 어떻게 대처해왔으며 향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골드핀치는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 호이스 미술관으로 복귀하기까지 뉴욕의 프릭 미술관에서부터 네덜란드 내의 여러 전시회를 거치며 끝없는 여정을 이어갔다.


이렇듯 작품에 대한 고취된 기대감은 대중들로부터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것이고, 이는 예술가와 그들의 창작활동에 큰 도움을 준다. 골드핀치의 인기는 원작 그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프릭 미술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람객들을 끌어 모았으며 이것은 세기의 명작과 이를 소재로 한 탁월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골드핀치에 열광하며 작품의 존재와 가치를 지켜주는 수호자인 관람객들의 꾸준한 교류로 탄생한 예술과 문화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파브리티우스의 작품 중 그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고에서 살아남은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대중은 소설을 읽거나 그림을 감상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 작품 감상에 참여함으로써 ‘골드핀치’에 더 많은 가치를 더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골드핀치’를 매우 잘 지켜왔다. 하지만 시대의 명작과 새로운 세대의 창작물들을 보호하기까지 여전히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현실이 깊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Ever-Changing Journey Pt.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