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정세랑
경민은 어딘가 소화불량 같은 서운함을 만드는 애인이었어. 그의 몸에는 한아를 오랫동안 사랑했던 외계인이 들어오지. 주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데 한아는 호신용품을 만들 만큼 경민의 변화를 특별하게 여겼어.
여차저차 둘은 서로 사랑하게 돼. 그러다 외계인 경민이 잠시 떠나. 한아는 밥도 먹지 못하고, 자주 멍을 때려. 그러면서도 일을 이어갔지. 모두가 한아가 괜찮은 줄 알아. 한아의 갑각류(안은 몰랑하지만 겉은 딱딱한)같은 친구 유리만 그걸 알아차려.
돌아보면 나한테 아주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참 많았어. 그게 참 자주 서운해했는데. 이 논리에 따르면 아플 필요가 없어. 촉수가 내게 없으면 알 지도 못하는 거자나. 그냥 그 사람 촉수가 불행히도 무지 발달하지 못했거나, 나에게 향하지 않은 거겠지.
사랑한다는 건 화질 좋은 망원경으로 샅샅이 관찰하는 일인가봐. 그 작은 변화마저도 탁 걸려버릴 만큼.
내 몸에 외계인이 들어오면 누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어쩌면 여러번 나한테 외계인은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어.
유림이는 내가 일주일 간 잠수를 타겠다고 했을 때, 그 다음날 진즉 연락이 왔어. 사실 말이 잠수지 나는 이유림한테 잠수타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내가 잠수탄다는 말의 의미는 늘 이유림외 타인이었거든. 그때 유림인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곧바로 연락이 왔어. 나도 얘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까 마침 문자를 넣었어.
어쩌면 지구에 있는 인간은 촉수를 조금만 가지고 있을 거야. 겨우 해봐야 한 둘? 나도 그런 것 같거든. 시간이 부족하잖아. 그 촉수를 나에게 발동해준다는 건 정말 지구에서 한아뿐인 귀중한 일인 것 같아. 그래도 평균보다는 더 섬세하고 많은 촉수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네. 예민한 기질이 이렇게 아름답게 해석될 수 있다니!
책에서 다 연결돼있어서 생각이나 감정이 한 번에 공유되는 그런 행성도 나와. 그런 행성에 살면 참 편하긴 하겠다. 그 행성은 3000년 동안 전쟁한번 일어나지 않아. 부러워. 어쩔 수 없지 우린 지구인이니까.
다음은 <아무튼, 비건>을 읽으려고. 환경주의자가 주인공인 책을 읽고 나니까, 그 삶이 가치로와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