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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혁 Dec 12. 2021

마모루 짐승

우리 환절기 형이 사랑이 뭘까를 보자고 했다. 일본 영화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사랑이 뭘까’ 아주 흔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아주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사랑이 뭘까... 사랑이 뭘까...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입에 그렇게 달고 다녔다. 이 영화는 사랑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아무튼 다양한 사랑이 있지만 모든 사랑이 아름답지는 않다. 편면적 사랑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어떤 편면적 사랑은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테루코는 사랑이었지만 마모루는 사랑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장면은 마지막에 나오는 코끼리밖에 없다. 나는 마모루를 볼 때마다 짐승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고 나는 코끼리를 볼 때마다 고양이를 생각한다.


문득 코끼리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는 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것도 너무나 많다. 내가 교복도 입기 전에 고양이가 죽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 겨울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는 내가 아주 애기일 때부터 자주 가던 공원이 있다. 나의 모든 추억은 그 공원에 있다. 고양이가 그곳에 죽어있었다. 정말 걷는 모습으로 꽁꽁 얼어있었다. 어린 시절 내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동물들의 겨울은 상당히 춥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이 힘들 때면 강을 보러간다. 한강에 가서 콜라한 잔을 마시고 온다. 스무살 부터 그러기 시작했는데 독서실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 였다. 여느날처럼 가슴이 답답해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갔다. 자전거를 타면 2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한강이 있다. 천호대교 아래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진다. 스무살 때부터 그렇게 한강을 자주 갔다. 어느 날은 다리 밑에 푹 젖어있는 백팩하나를 보았다. 물에 푹 젖어있는 백팩은 나를 상상하게 했다. 부풀어진 백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상하며 살짝 공포스러워졌다. 그리고 커다란 호기심에 백팩의 지퍼를 열었다. 백팩 안에는...


고양이가 죽어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죽고 나서 백팩에 들어간건지, 백팩에 들어가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 것인지 상상하다가 그만 두었다. 다만 생명을 이렇게 두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에 무서움을 느끼고 112에 신고를 했다. 순찰차가 강 쪽으로 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무거운 하루였다. 두 번이나 고양이의 죽음을 보면서 동물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벌써 몇 년이나 흘렀다.


우리 집 바로 뒷골목에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있었으니까 벌써 12년도 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디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난다면 주위에 고양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는 꼭 아이가 밥 달라고 우는 소리 같았다.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양이의 엄마는 어디 있냐고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내 방에서는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의 엄마는 어디로 간지 모르겠다. 길고양이 어머니가 그곳에 와서 밥을 주신다. 밥을 줄 때마다 고양이는 조용해진다.


재건축이 열풍인 우리 동네는 건물을 하나씩 부수고 있다. 사람이 떠난 건물에 있는 고양이 가족을 보았다. 정말 아주 작고 인형 같았다. 그때가 한 달 전쯤 이었으니까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싶었다. 편의점으로 가서 고양이의 밥을 샀다. 내 손으로 고양이 밥을 산 것은 그때가 두 번째였다. 그냥 이 아이가 배부르고 다가오는 겨울에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이 추워지는 데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따뜻한 곳으로 가면 좋겠다. 그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그 겨울 고양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적어도 연락 없이 사라진 마모루라는 짐승보다는 사랑이 있다고 느껴진다.


연락없이 사라진 마모루를 기다리는 테르코를 보면서

겨울을 나야하는 고양이를 보면서


사랑은...

걱정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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