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방목육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가 뱃속에 자리 잡은 걸 알던 날, 나는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볼품없고 비참했지만, 내 아이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호주라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나만 잘하면 최고의 육아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내가 꿈꾸던 엄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늘 비교했고, 불안했고, 불행했다. 엄마로서의 나 역시 그간 살아온 인생의 모습만큼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렇게 끝도 없이 찾아오는 자괴감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를 예민한 불만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아이만을 바라보며 정작 '나'를 볼 줄을 몰랐다. 그게 맞다고 생각하며 엄마인 나를 먼저 이해하고 믿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아이를 향한 육아를 해 댔다. 그러자 아이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믿었던 시간들이 결국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불행하니 아이도 불행해졌다.
"아니 애한테 중요한 시기에 엄마가 대학을 간다고?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첫애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조심스레 꾸던 꿈을 아이 친구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친하다고 믿었고 많이 의지했던 사람에게 들었던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적어도 그 사람만큼은 나의 꿈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줄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인 나의 희생이 없이는 아이가 잘 클 수 없는 잘못된 육아의 세상 속에 살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런 엄마의 희생에 아이까지 또 다른 피해자가 되고 있었다.
'나도 아이도 결국 행복한 육아를 하자.'
그렇게 나는 속세의 육아를 포기하고 나만의 육아방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엄마로서 부족한 나의 모습은 그럴 수 있다며 이해했다. 그러자 아이의 부족함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이해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모두 다르며 부족할 수 있고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오직 건강하고 행복한 환경을 주는 것에 집중했다. 거기에 가치관과 예절, 그리고 올바른 생활습관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만 잘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그러자 모든 게 쉬워졌다. 그만큼 여유가 생기자 빈 공간에 사랑과 행복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방목육아라고 이름 붙였다. 자주 보던 호주의 들판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튼튼한 울타리가 쳐져있는 안전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사랑을 가득 품고 세상을 마음껏 경험하게 하는 육아가 바로 방목육아이다.
육아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지금 나는 행복한 엄마이다. 아이들이 마냥 사랑스럽고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마냥 기대된다. 다른 사람들의 육아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허락된 소중한 이 시간이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며 나의 고백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