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불안한 엄마의 탄생] 내가 만족하는 육아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기일때의 첫째는 낯선사람과 환경을 극도로 싫어했다. 엄마와 둘이서만 똑같은 같은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거다. 당시 나는 부족한 생활비를 보태기위해 호주제품을 구매대행으로 한국으로 판매를 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 낮에는 큰아이를 데리고 쇼핑센터에서 주문이 들어온 제품을 구입하고 밤에는 집에서 컴퓨터로 일처리를 하고는했다. 밖에 나가봤자 고작 집근처 놀이터였다. 집, 쇼핑센터, 근처 놀이터가 드넓은 호주땅에서 아이와 내가 경험하는 전부였다. 심지어 바쁜 엄마때문에 아이는 집에서도 뽀로로를보며 방치되는 시간이 많았다. 옆에 엄마는 있지만 늘 외로운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18개월이 되었을때, 집근처 도서관에서 하는 스토리타임을 처음 데리고 가보았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무료 프로그램으로 매주 한시간씩 진행되었다. 18개월부터 3살까지 듣는 토들러타임과 3살부터 5살까지 아이들에게 운영되는 키즈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짐보리 프로그램은 가격도 비싸고 거리가 먼곳에 있었기때문에 무료로 제공되는 도서관 프로그램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독서가 취미인 엄마이다보니 집에서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해주는 놀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아이가 책을 좋아할줄만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아이는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 들어가는것부터 거부했다. 도서관 입구에서 안들어가려고 반대쪽으로 내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어찌 달래서 들어가면 빙 둘러 앉아있는 낯선사람들을 보고 내 품으로 숨거나 다른곳으로 도망쳤다. 그런 아이에게 화가났다. 얌전하게 엄마무릎에 앉아 선생님께 집중하는 다른 아이들에비해 우리 애가 너무 이상했다. 안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그와중에 짬을내서 일부러 데리고 와준건데 떼쓰고 소리지르고 다른곳으로 도망가버리는 아이가 미웠다. 말도 늦어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붙들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기 일쑤였다.
아이가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의 육아를 했다. 아이가 거부하는 이유를 찾기위해 아이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커녕 내 기준의 잣대를 들이댔다. 엄마와 둘이서 익숙한 환경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고 집에서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일이 많았던 아이에게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들이밀어놓고 말이다. 말도 느린 아이가 영어로 읽어주는 책을 이해할리가 전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집스럽게 몇달을 데리고갔다. 그래도 적응을 못하는 아이를 보며 결론지었다. 아마 한국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데려가면 아이가 훨씬 적응을 잘할거라고. 그렇게 한국사람들이 가는 플레이그룹을 찾아보게되었고 결국 그곳에도 발을 들였다. 내 아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