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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un 11. 2024

아들의 생일

나도 내 생일에 엄마가 밥 차려 줬으면 좋겠다.

 월요일이자 월급날인 오늘은 큰아들의 생일날이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큰아들을 낳았다. 생일이란 것이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나는 생일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미역국 한 그릇도 못 먹고 김칫국을 먹었고 같은 동짓달 생일인 남동생은 할머니가 떡을 해서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했지만 나는 떡은 고사하고 김칫국이 전부였다. 그렇게 생일에 대한 나의 기억은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다.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내 생일에 내가 미역을 불리고 밥을 지어야 했다. 남자들만 사는 이 세계에서 아들의 생일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일하느라 퇴근이 조금 늦었다. 아들 생일이니 구색이라도 맞춰 삼색나물이라도 해야 싶어 마트에 들렀다. 이것저것 바구니에 주워 담고 계산을 하는데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던 장바구니까지 보이지 않았다. 가방에 물건들을  구겨 넣고 손에 들고 급하게 집으로 왔다. 아들은 이미 집에 와 나의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색 비슷한 나물과 반찬 몇 가지를 만들고 미역국을 데워 아들의 생일상을 완성했다. 사실 미역국은 항상 전날 불린 미역에 소고기나 전복을 넣어 끓여주었는데 너무 바쁘고 국을 잘 먹지 않는 아들이기에 시판용 미역국을 데웠다. 생일 밥상을 차려놓고 아들을 불렀다. 미역국에 밥 한 숟가락을 말아 마시듯 먹었다. 아들과 마주 앉아 먹는 저녁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1분 남짓 미역국 한 숟가락을 먹고 다시 싱크대 앞에 섰다. 소고기라도 사서 구워주지 못한 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슬쩍 돌아보니 미역국과 반찬들을 잘 먹고 있었다. 늘 하던 잡채도 하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물을 하고 남은 얼갈이 소금을 쳐 한번 뒤집고 김치 양념을 만들었다. 퇴근 후라 몸이 녹아내리고 있어 대충 양념을 만들었다. 냉동실을 털어 이것저것 넣고 만든 빨간 양념에 씻어 놓은 얼갈이를 넣고 버무렸다.


 큰아들의 생일이면 나는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 분만실로 들어가고 있는데도 시어머니는 벌써 애가 나올 리 없다며 남편을 내보냈다. 일을 보고 와도 애가 절대 나오지 않으니 급한 일을 보고 오라고 했다. 가지 말라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분만실에 들어가고 30분이 되지 않아 출산을 마쳤다. 나는 산부인과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쓸데없는데 힘을 빼지 않고 진통이 올 때 힘 세 번을 주니 애가 나왔다. 그렇게 쉽게 보이만 쉽지 않게 출산을 마치고 탯줄을 자를 남편을 찾았지만 없었다. 분만실 밖에 있던 시어머니는 자신의 손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애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태어났지만 할머니라는 사람에게 부정을 당했다. 36주에 태어나 2, 5kg밖에 되지 않았지만, 무쌍의 큰 눈에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지고 나에게로 왔다. 얼굴의 반이던 큰 눈은 다행히 작아지지 않고 지금도 매력적이다. 태어날 때 붉던 피부는 자라면서 흰 피부로 변했고 보는 사람마다 여자애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여드름으로 엉망이 되어 안타깝지만 본바탕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생일날엔 부아가 치민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과거에 내 가슴에 박힌 대못은 쉽게 뽑히지 않는다. 녹이 슬어 나와한 몸이 된 듯 딱 붙어 떨어지지 않고 나에게 더 큰 상처를 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결혼 22년 차가 되니 조금은 더 참아지고 또 조금은 마음이 넓어진 것도 같다. 안 되면 되게 하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한 것인지 결혼 22년 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막산다. 웃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막살고 있다. 비록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기 바쁘게 집안일로 몸이 녹아내려도 아직 참을 만하다. 자식이 있어서 좋기도 슬프기도 하지만 가끔은 바라만 봐도 좋아서 어쩔 수 없는 것이 나도 고슴도치 엄마인 것 같아 슬쩍 웃고 만다. 다음 큰아들의 생일에는 더 좋은 마음으로 더 맛있는 밥을 해서 오늘보다 좀 더 오래 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때 나의 시간이 또 아들의 시간이 허락하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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