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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un 21. 2024

맥주 먹기 좋은 시간 AM 07:45

집주인은 못 보는 남의 집 담벼락 뷰와 함께  아빠를 생각하며.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 나는 집을 나섰다. 사실 직장인에게 금요일은 뭔가 쉼! 같은 날이다. 불금까지는 아니더라도 토요일과 일요일에 뒤에 버티고 있으니 금요일 밤이야 말로 진정한 휴식의 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금요일에 동생이 집 앞에 차를 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전 엄마가 계시는 시골에 감자를 캐러 가기 위해 늦은 밤 동생과 함께 길을 나섰다. 12주 동안 매주 일요일에 생긴 일정 탓에 금요일밤부터 토요일까지만 시간을 낼 수가 있었다. 우리가 가는 줄 모르는 엄마에게 도착 30분 전에 전화를 해 거실에 이불을 깔아 달라고 했다. 기다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를 했지만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은 꺾을 수 없었는지 골목을 들어서며 불 켜진 집을 보고 동생과 나는 소리 내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해 짐을 옮기고 이불을 깐 거실에 누었다.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시골의 아침은 도시의 아침보다 일찍 다가온다.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음절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알람을 끄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선크림을 발랐다. 팔에는 챙겨간 쿨토시를 꼈다. 농사용 모자도 야무지게 묶어 쓰고 감자가 있는 뒷밭으로 향했다. 해가 뜨지 않았지만 새벽 5시의 아침은 묘한 긴장감 마저 들었다. 새벽 감성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감자를 캐기 위해서는 줄기를 뽑고 비닐을 걷어 내야 했다. 고랑에 들어선 동생과 나는 처음 몇 발자국은 요령 없이 흙먼지만 들이마셨지만 작년 고구마를 캐본 경력자였다. 엄마의 지시에 따라 감자줄기를 뽑아 옆으로 놓고 비닐을 걷었다. 오후엔 비예보가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걷어낸 비닐은 조카가 모아 비료포대에 담았다. 토요일 새벽에 일찍 출발한다는 오빠는 소직이 없었다. 오빠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비닐을 벗긴 감자고랑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비가 오지 않은 밭의 흙은 바싹 말라 있어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감자를 캐낼 수 있었다. 감자를 크기별로 옆으로 모았다. 감자가 빠진 흙고랑은 호미로 평평하게 정리를 하면서 전진해 나갔다. 모아놓은 감자를 박스에 담으려고 할 때 오빠가 도착했다. 경력자들의 손은 속도가 붙었다. 5명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감자 캐기를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아침을 즐겼다. 전날 동생이 마트를 몇 번이나 오가며 준비한 삼겹살과 장어를 굽고 커다란 수박도 먹었다. 운전을 하지 않는 나만의 특권으로 나는 맥주캔을 땄다. 완전한 알콜은 오랜만이라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침 7시 40분이었다. 수박반통을 잘라 감자를 캐는 동네 어르신들께 드렸다. 다들 집에 과일이 없지는 않겠지만 시골인심이 또 그렇지 않다. 혼자 계시는 엄마가 며칠을 먹어도 다 먹지 못할 과일들을 나누고 집안 정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채소를 따러 갔다가 구석에 있는 감자 한 고랑을 발견했다. 엄마는 자식들 땀나는 걸 걱정했다. 그러나 경력자인 우리 형제들은 분업화된 기량을 뽐내며 일사천리로 마지막 고랑까지 모두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집안 이곳저곳을 살폈다. 에어컨 커버를 빨고, 빨래를 걷고 마당에 물을 뿌렸다.


호원결의_우린 유(劉) 비의 자손
캔맥주_AM 07:46



주인은 못 보는 남의 집 담벼락 뷰


 부엌의 작은 창으로 보이는 옆집의 담벼락 뷰는 시골집의 최애 장소이다. 빨간 벽돌에 담쟁이가 타고 올라가 집주인은 보지 못하고 우리집 부엌 창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키워서 남주는 정말 예쁜 그림이 된다. 그렇게 남의 집 담벼락 뷰를 즐기며 아침에 마시던 캔맥주 하나를 비웠다. 오빠가 짐을 챙겨 출발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동생과 나는 차에 올랐다. 골목에 서서 손을 흔드는 엄마와 두 딸은 서로 먼저 가라 손짓을 하며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차 안의 열기로 내비게이션도 말을 듣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차속은 여전히 더웠다. 동생과 내가 졸음과 사투를 하다 휴게소에 들었을 때 동생이 나에게 사과를 했다. 우리가 차속에서 더웠던 이유는 어젯밤 추워서 에어컨 세기를 높이지 않았었는데 그 상태로 운전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남은 1시간가량은 시원하게 올 수 있었다. 차가 고장 났다고 생각했는데 고장은 두 자매가 난 것이었다. 

 엄마는 그날 여러 집에서 감자를 캤지만 엄마가 심은 감자가 제일 크고 맛도 좋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흙이 묻어 있지 않아 깨끗한 감자를 물로 헹궈 껍질째 삶았다. 포근하고 달짝한 감자가 입안에서 녹았다. 그 작은 밭에서 나온 감자는 얼마간 나에게 풍요로운 행복감으로 내 입과 마음을 채워줄 것이다. 구황작물에 미친 내가 이 감자를 가만 놔 둘리가 없다. 감자를 먹으면서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택배로 받기만 했다. 자식이라고 크고 좋은 것만 골라서 주는 것인데도 화를 냈다. 사 먹으면 된다고 다 먹지 못해 음식물 쓰레기된다고 보내지 말라고 자식인 내가 화를 냈다. 그런 섭섭한 소리를 들어도 아빠는 해마다 감자를 보내고 고구마를 보내고 쌀을 보냈다. 가끔 드리는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방패 삼아 나는 화만 냈다. 농사일을 어릴적부터 해왔지만 결혼하고 자식 키우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 마트에 가면 맛도 보장이 되고 깨끗하게 포장되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도 되는 쉬운 음식에 길들여져 보모의 마음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엄마는 남은 감자를 모두 이모에게 팔아 이제 더 먹고 싶어도 올해의 감자는 없다. 며칠 동안 삶아 놓은 감자를 마음껏 먹은 탓에 체중감량을 시작한 후 2년 동안 유지 중인 체중은 2kg이 증량되었다. 체중계가 고장 난 줄 알고 47kg이라는 숫자를 보면서 몇 번이나 체중계를 오르내렸다. 아마 며칠간 저녁은 굶을 것 같다.

 아침 7시에도 캔맥주를 마시고 안주로 삶은 감자를 베어무는 상여자가 된 나는 70넘은 엄마의 약바구니를 보면 걱정으로 한숨이 나온다. 가끔 이렇게 구황작물을 핑계 삼아 달려가 억지 효도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몇 달 후 고구마를 캐러 또 동생과 시골로 달려갈 것이다. 그때도 농사 경력자로서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것이다. 또 몸무게가 늘어나 놀래겠지만 효도를 핑계 삼아 새벽일을 마치고 아침에 마시는 시원한 캔맥주를 즐겨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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