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의손 Jul 04. 2024

택배를 보내자 엄마는 화를 냈다.

원래 그래.

 며칠간 내린 비로 출퇴근이 조금 번거로웠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오기도 했지만 오후엔 비가 그치고 햇살까지는 아니더라도 해가 떴다. 오전에 일을 하다 시골에 계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비피해는 없는지 물었더니 엄마는 갑자기 화를 냈다. 나는 비가 며칠 동안 왔는데 안부전화를 늦게 해서 화를 내는 것 같아 자식이라고 있어봐야 무용하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는 과일이며 국거리며 다 먹지도 못할 텐데 무엇을 그리 많이 사서 보냈냐며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진 후로는 엄마가 계시는 시골에 물건을 보낸 적이 없었다. 내가 돈을 주면 여동생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사서 보내는 형식으로 얇은 효도를 할 뿐이었다. 새언니나 올케가 보낸 것을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더니 여동생과 통화를 했고 분명 내가 샀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는 보내지 말라고 또 화를 냈다.

  엄마가 말한 택배로 온 털 없는 복숭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냉동실과 김치냉장고도 비좁아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는데 택배가 자꾸 오니 처리가 곤란하다고 했다.  털 없는 복숭아는 여름에 몇 주 잠시 나오는 신비복숭아였다. 딱복과 물복 중 엄마는 딱복파이다. 그런 엄마에게 물컹한 털 없는 복숭아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엄마 생각해서 제철에 잠시 나오는 복숭아를 동생이 고르고 골라 보냈을 것이다. 즉석국도 남은 반찬들을 아무것이나 넣고 삶아 몇 날 며칠을 먹고 탈이나 병원을 가고 검사를 한 경험이 있어 더운 여름 불 앞에서 이상한 음식 만들지 말고 한 끼에 하나씩 데워 드시라고 마음을 담아 보낸 것이었다. 

 나도 목소리가 크고 앙칼지다. 마음먹고 말을 하지 않고 목구멍에서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 밖으로 나오면 그 소리는 정말 기분 나쁘고 남을 질타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도 그 부분에 있어 실수를 하게 될까 봐 매일매일 목소리 톤을 낮추고 천천히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요소가 많아 타인과의 만남을 할 때만 긴장을 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해를 해 주기도 하지만 내가 익숙한 사람들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상황은 바뀌기 때문이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도 마찬가지다. 나의 설명은 듣지도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끊기도 하고 설명을 들을 생각조차 없을 때가 많다. 엄마가 큰소리를 내고 천둥같이 고함을 질러도 그 속내를 알기에 섭섭하지는 않다. 조금 아쉬울 뿐이다. 

 여동생과 통화를 했다. 제철 잠시 나오는 털 없는 신비복숭아를 고르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엄마의 식성을 고려해 즉석국도 보냈다고 했다. 택배를 받고 엄마가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을 때 마침 제부의 생일이라 함께 차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볼꼴 못볼꼴 다 본 남편이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사서 친정에 보냈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애매해서 나의 심부름이었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내가 번 내 돈이라도 남편의 눈치가 보이는데 외벌이를 하는 제부 앞에서 '내가 보냈다' 말하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다. 동생이 사 보낸 별거 아닌 과일과 또 별거 아닌 즉석국 몇 개가 오늘 나에게 고함으로 돌아온 것이다.

 돌아가신 아빠도 늘 나에게 화를 냈다. 좋으면서도 자식이 돈 쓰는 것이 미안해서 늘 화를 냈다. 그러지 말라고 괜찮다고 늘 말해도 무엇을 보내면 화를 냈다. 크건 작건 택배가 도착하면 나에게 전화를 해 화를 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더 잘 챙기지 못한 마음이 컸지만 여동생은 내가 보낸 택배이야기를 하며 나를 달랬다. 그것이 위안이 될 줄 나도 몰랐다. 오늘 아침에 화를 내는 엄마에게 화대신 '고맙다'라고 말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는 '알았다' 대답은 하지만 또 이런 상황이 생기면 화를 낼 것이란 걸 안다. 원래 부모와 자식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이 돌고 도는 도돌이표인 것을 안다. 아마 내가 70살이 되면 오늘 아침 엄마처럼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자식에게 화는 내지 않았으면 한다. 진심을 담아 '고맙다'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10년은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고 한다. 땡볕에 밭에 나갈 엄마에게 내일 또 전화를 해 잔소리를 할 것 같다. 딸이 없는 나보다 딸이 있는 엄마가 오늘은 부럽다. 화를 내는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 계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내일은 특별잔소리를 해 드릴 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