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병실에서 고성이 오갔다. 환자인 아버지와 보호자인 딸이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큰소리가 난 것이다. 환자는 음식을 삼키지 못해 금식상태로 물만 조금씩 먹을 뿐이어서 작은 체구는 더욱더 작아 보였다. 복수는 복수대로 차고 있어 잠시 침상에 앉아 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그런 환자가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딸은 딸대로 답답한 마음을 아버지에게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큰 소리에 병실로 달려갔다. 환자는 딸이 한순간에 변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먹지도 못하고 병원에만 있으니 답답하고 갑갑하다고 했다. 아무리 자려고 해도 직원들과 면회객들, 같은 병실의 환자들 소리에 잠을 며칠째 자지 못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잘 살아왔고 자유롭게 살았는데 잠을 못 자고 답답하다고 했다. 지금은 컨디션이 너무 좋고 지금 같으면 날아다닐 것 같다고 하며 팔을 들어 움직여 보였다. 집에 가서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틀어 놓고 잠을 자야겠으니 퇴원하고 싶다고 했다. 오전에 담당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고 현재 상태로는 당연히 퇴원은 힘들다고 했을 것이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겠다"
딸은 매일 면회를 와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갔다. 아버지가 혼자 생활하시다 다치시거나 응급상황이 생기면 자신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니 퇴원은 반대하고 있었다. 환자는 딸이 지금껏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었기 때문에 퇴원을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딸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큰 것 같았다. 딸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았다. 말로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에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아버지의 고집을 넘어서지 못했다.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도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호스피스만큼 진통제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곳은 드물다. 호스피스의 첫 번째 목표는 환자의 편안함이다. 이것은 통증조절이 우선되어야 한다. 보통은 통증조절이 되고 편안해하신다. 그 편안함이 치료가 되고 나아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말기병식이 있고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어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환자라면 병원이 싫다. 하루를 살아도 병원이 아닌 내가 생활하던 집으로 가고 싶은 건 사람이라면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그 뒤가 문제일 뿐.
어떤 결정을 하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면 억지로 병원에 잡아둘 수는 없는 것이다. 이 환자는 결국 외출을 하기로 했다. 6시간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와야 입원상태가 유지된다. 만약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퇴원절차가 진행된다. 어떻게 하든 환자와 보호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다만 퇴원이 진행되면 다시 입원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다른 호스피스에 자리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니 퇴원처리 후가 걱정이다.
호스피스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반쪽은 환자나 보호자의 가족이 된다. 어쩌면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환자와 함께하고 같은 고통을 느낀다. 어떻게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일지 고민은 하지만 결정은 대신할 수 없어 답답한 시간이었다.
내 아버지라면, 내가 환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퇴근을 하고도 고민이 깊어지는 날이다.
_ 수정
주말을 지나며 기력저하로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는 집으로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