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ka Apr 29. 2022

호접지몽

일장춘몽

봄이 오니

벌레가 날아다니는구나.

벌레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상상이 곧 현실이 되어버리니

벌레가 나인고, 내가 벌레가 되어버렸는고.

벌레의 시야가 머리에 들어오네.

꿈인가. 충몽을 꾸고 있는가.

혐오의 잎을 따고 있던 벌레에겐 이 또한

춘몽인가.


벌레 대하듯, 대하거라.

하늘거리는 나비 역시 벌레였을 진데

호접지몽 또한 나의 소유였도다.

내가 쉬는 한 호흡이었으니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의 끝에

내가 장자라 할 수 있는가?

꿈을 꾸다는 표현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잘 자라 안부를 건넬 수 있는가.

그저 벌레 대하듯, 대하거라.


망각의 종에 덧없음을 얹었소.

사실 찰나에 영겁을 응축시켰다오.

당신은 어떤 벌레가 되었소?

생명의 탄생과 소멸의 과정에서

그대가 벌레가 된 이유가 생각이 나오?

벌레가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 구분은 어려운 문제지. 내가 벌레인지, 벌레가 나인지.

사람은 누구나 벌레의 꿈을 가지고 산다오.

탈 바꿈. 그대의 가면을 보시오.

씌어진 상태로 무엇을 볼 수 있겠소?


기어오르고, 구르고, 넘어지며, 헤엄치고, 날아간다.

봄의 기운을 받은 아이가 꿈틀거린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버렸다고 생각한 아이는 자루 모양의 집에서 나온다.

다시, 충몽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일면서

나를 인식하는 경계가 흐물해진다.

가치가 개입되지 않는 벌레의 생에 관용이 깃든다.

어쩌다, 변태하게 된 건지

그의 행동에 분노하지 않는다.

어떤 이해심에 이끌려 그의 삶도 하나의 삶이라는 이상한 인정에 도달한다.

벌레의 꿈을 꾸면 나 역시 그럴 수 있으니.

감정이 찬 게 아니라면 사랑 같은 것들이 꿈에 들어오기를.


멀리서 본다면

그저 하나의 순간이며 같은 미물이오

드높은 곳에서는

우리는 하나의 입자가 되오.

그런 꿈을 꾸는 당신에게

장자라 할 수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보다, 더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