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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스워드 Feb 01. 2018

전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부동산에 관한 뉴스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최근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기사는 아무래도 ‘전세대란’이라는 기사일 것이다. 집을 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전세란 참 매력적인 제도임이 분명하다. 집값을 모두 들이지 않고도 일정기간 거주할 수 있으며, 따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전세자금은 나중에 돌려받는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전세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집을 제공하는 공급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전세가 수요자에게 좋기만 하다면, 어떻게 이 제도 가정부의 특별한 노력 없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전세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도 당연히 그만큼 혜택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시장에서 전세가 사라진다는 말은 공급자에게 가는 혜택이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넓은 의미에서 전세 시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요와 공급이 존재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뉴스에 나오는 전세대란이라는 내용을 보면 수요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전세제도가 사라질지 존속될 수 있을지는 공급에 달려있을 것 같다. 


사실 부자인 사람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전세를 내놓는 사람들보다는 전세를 찾는 사람이 많으므로 항상 뉴스에는 수요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제 공급자의 입장을 함께 살펴보면서 냉정한 경제적 현실을 파악해보자. 즉, 전세 공급자는 어떠한 혜택을 누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경제적 동기로 인해 그 제도를 유지하였고, 이제는 그 제도가 사라지려고 하는지 말이다.


딱히 추가로 드는 돈도 없는 전세는 수요자들에게 참 유용하다. 그렇다 면도 대체 공급자는 전세를 제공하고 어떤 혜택을 받고 있었을까? 첫째는 집값 상승을 통한 시세차익이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전세가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집주인이 전세를 주는 경우 전세 자금을 받아서 집을 더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번 예를 들어 보자. 매매가 2억짜리 아파트가 한 채 있는데, 만일 전세로 제공하는 경우 집값의 70% 수준인 1억 4천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월세로 주면 전월세 전환율(전세를 연간 월세로 바꿀 때 사용하는 비용) 6% 정도를 가정해 볼 때, 1억 4천 * 6% = 8백4십만 원 정도가 나온다. 즉, 월 7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집값 상승에 별로 관심이 없고, 월급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월 70만 원의 지출은 큰 비용이다. 위에 같은 조건에서 전세 1억 4천만 원인 집과 월세 70만 원인 집이 있다면 대부분은 전세 1억 4천만 원을 선택할 것이다.


다시 집주인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보자. 집주인은 단순히 이 돈을 은행에 예금해서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는 집값이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이 돈으로 다른 집을 사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게다가 전세를 주기 전에 은행에 집을 담보로 돈을 일부 빌리고, 전세를 주면 1억 5천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이 돈에다가 기존에 자신이 가진 돈을 보태어 기존과 비슷한 크기의 집을 또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돈만 가지고 조금 더 작은 집을 살 수도 있다. 


그 뒤에는? 만일 집값이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또 전세를 주고 돈을 끌어와 집을 또 사면된다. 이론적으로는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조금의 원금을 가지고, 부채를 이용하여 집을 몇 채 또는 몇십 채까지 가지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집값이 오르면 어마어마한 차익을 남길 수 있게 된다. 이게 정말 가능한가 싶기도 하지만, 실제로 집값이 폭등하던 2천 년대 초반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이다. 집값이 무조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세와 대출을 활용해서 무조건 집을 사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집을 사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제는, 역설적으로 집값이 별로 오르지 않기 때문에 전세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집주인이 전세를 제공한 가장 큰 이유는 그 돈을 활용해서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인데,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굳이 목돈을 받아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고 차라리 매월 일정 금액의 월세를 받는 편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강남 지역에 급등하는 집값은 예외로 하자.)


둘째 이유는 이자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시세 차익이 없어도 이자율이 높기만 하다면 월세 대신 그 돈을 받으면 된다. ‘응답하라 1988’을보면 ‘요즘은 예금 이자율이 15% 밖에 안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기예금이 2%도 안 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이자율이지만, 과거에는 분명 15% 이상의 금리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전세자금을 받아서 넣어도 이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월세를 받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굳이 두 가지 이유 중 전세 제도를 유지하는데 조금 더 크게 기여하는 것은 집값 상승 요인일 것이다. 단순히 집값이 계속 오르기만 한다면, 전세 자금 받은 것으로 집을 더 사고 차익을 남기면 충분히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전세제도가 존속하는 상황에서는 집을 사기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집 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전세를 이용해서 거주지를 구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집을 사고 싶다면 계속 올라가는 집 값을 쳐다보기만 해야 할 수도 있다.


전세대란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며, 철저하게 수요자와 공급자의 경제적 동기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슬프지만, 전세라는 제도는 이제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제도로 사라질 것이다.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예상되는 미래의 인구 감소 등을 고려해 볼 때, 집 값이 크게 상승할 이유가 별로 없다. 집주인들이 자원봉사자가 아니고서야 집 값도 상승하지 않고, 금리도 낮은 상황에서 전세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아직 그래도 일부 남아있는 전세를 남들보다 빨리 찾거나, 아니면 상황을 받아들이고 월세에 거주하면서 세액 공제 혜택을 보든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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