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저녁식사
[휴블랑]이라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월요일 저녁을 같이 먹자고 묻길래 흔쾌히 그러자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1:1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여럿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대화 나눌 때 나는 머릿속으로 다음 문장을 짜 맞추면 되는데.. 안 되겠다 싶어 친구에게 부랴부랴 연락했다. 그날 같이 만나자고 했더니 개인톡으로 연락 왔는데 자기가 가면 이상하다고 자리를 피했다.
이미 밥을 먹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제 와서 취소하기도 애매했다. 단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지속적으로 영어문장을 내뱉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때부터 심장이 떨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역시 영어 울렁증은 극복된 게 아니었다. 새하얀 백지장을 가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창밖만 쳐다보았다. 그의 요청에 별생각 없이 밥 한 끼 먹자는 생각이었는데 나는 멍했다. 어찌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갈라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드디어 그가 걸어 들어왔다. 지난 토요일 보다 밝은 레스토랑의 오렌지 불빛 아래서 만난 그의 모습은 또 새로웠다. 굉장히 어려 보였다.
큰 누나 같은 마음으로 미국에서 혈혈단신 날아온 지 겨우 네 달 남짓된 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사 먹여야겠다는 는 생각에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굉장히 어색했다. 뭐 영어를 할 줄 알아야 말이지...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내 첫인상이 어땠는지 물었다. 그는 내 뒤에서 sunshine이 나오는 걸 봤다고 했다. What? 나는 정말 빵 터져서 웃고 또 웃었다.
"너 여자들 처음 만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작업 멘트니? 말도 안 돼!" 뭐 이런 뉘앙스로 그에게 영어로 막 말을 했다. 틀리든지 말든지 말이 술 술 나왔다. 그랬더니 얼굴이 새 빨게 지면서 진짜라고 했다. 외국인이 그것도 열 살이나 어린데 나보고 저런 입에 발린 멘트를 하다니...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인 거지.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가 계산을 했다. 내가 하겠다는데 굳이 자기가 하네. 누나가 돼서는 밥만 얻어먹고 헤어지려다가 미안해서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카페가 보일 때까지 조금 걸었다. 우리는 참 어색하게 서로를 의식하며 간격을 두고 걸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아무렇게나 영어 단어를 던져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쉬운 영어로 대답해 줬다.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때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아고 두 번은 같이 밥 못 먹겠네. 네버. NEVER! 영어로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가 밀려와 얼른 집에 가서 두 다리 뻗고 자고 싶었다. BYE~
또 카톡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