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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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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칼랭 Jun 08. 2021

어떤 위로라도 해달라고 내 팔을 두 번 친다면


"작가님이 한 말 때문에, K가 속상하대요."


허물없이 지내던 친한 PD가 던진 말이었다. 나는 K와 친하지도 않았고, 우리가 특별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데. 왜 내가 그를 속상하게 했을까.

이 상황을 알고 있다는 작가에게 은밀하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게 언니. 지난번 언니랑 프로그램할 때 언니가 K한테 뭐라고 했다던데."

 "내가?... 뭐라고 했는데..?"

 "언니가.... 뭐라고 했대."


 K는 그리 친하지 않은 동료 PD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나보다 후배다. 우리는 다섯 달에 한 번 정도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긴 시간이 지났어도 몇 번 만난 적도 없다. 몇 번의 만남은 이런 것이다. - 회의, 촬영, 회의, 편집, 그리고 회의.


그렇지만 아무 일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그에게 '무슨 말'을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많은 말"을 했다. 그것도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담은 목소리였을 것이다.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던 20대의 K는 언론 시험을 보지 않고도 방송 PD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짧은 이력서 한 장과 잘하겠다는 의지를 전하는 간단한 면접을 보고 프로덕션에 출근할 수 있었다.

방송을 재밌게 보며 자랐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해야 재밌는 방송을 만드는지 모르던 남자는 조금씩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을 조연출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 선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첫 번째 좌절을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30대가 되었을 때 우리는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처음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두 번 정도 함께 했다가, 다시 헤어졌고. 또 두 번 정도 같이 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몇 번 안 되는 작업 중에 마지막 방송을 할 때였다.


만약 누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이야기한다면,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솔직히 말해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올라오면서 혈관에 혈액이 빠르게 요동칠 것이다. 얼굴 근육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평화를 찾기 위해 큰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 나는 K를 다른 PD와 비교하며 말했다.


 "피디님, 촬영을 왜 이렇게 많이 했어요. 다른 PD들보다 두 배는 많아요."

 "보기 힘드셨죠. 미안해요."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잔소리를 덧붙였다.

 

 "피디님, 고민하지 말고 붙여요. 시간이 없어요."

 "죄송해요. 제가 고민을 좀 오래 하는 편이어서요."

 "안돼요. 고민만 하다가 시간 다 가요... 시간 없어요. 빨리 붙여요."


편집하는 것을 '그림 붙인다'라고 표현하는 우리는 언제나 이런 대화를 한다. 대부분의 작가는 PD에게 '빨리 그림 붙이라'라고 하고 PD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 달라'라고 하게 되는데, 이건 우리 세계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하지만 방송이 일주일도 안 남은 상태에서 K가 방송 분량의 절반밖에 편집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을 때. 방송 사고가 나지 않게 후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틀 밤을 새워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밤새는 작업을 어린 후배 작가들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 나는 화가 났고, 이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빨리 하랬잖아요."

 "죄송합니다."

 "이게 다 너무 많이 찍어서 그래요. 노력하는 건 좋은데, 많이 찍어봐야 처음 게 제일 좋다니까요."

 "죄송해요. 빨리 할게요."


 방송이 끝나고 K는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그에게 밥을 사라고 했다. 약속을 잡으면서 술을 먹자고도 했다. 하지만 바쁜 일정에 우리는 만나지 못했고 또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무엇이?





  

K와 함께 일하는 다른 작가가 술자리에서 나를 호출했다. K와 이야기하고 풀어보라는 뜻이었다.  물론 나 '풀어내야 할만한 무엇' 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바쁘게 진행되던 편집을 중단하고 이자카야로 갔다.


어색한 건배를 한 뒤에 K가 말했다.


 "작가님 미안해요. 다른 사람들이 헛소리 해서. 그냥 술 먹고 주정한 건데."


나는 손을 크게 내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땐 나도 말이 너무 많았던 거 같아서. 미안해요."


이번엔 그가 손을 더 크게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그때 촬영도 많이 하고, 편집도 늦고 해서 죄송해요. 맛있는 거 사드려야 하는데."


우리가 서로 손을 내저으며 어색하게 사과를 하는 동안 K는 조금씩 술에 취해갔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던 나는 다른 작가가 화장실 간 틈을 타서 고개 숙여 물었다.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속상했죠?"

 "....."


내가 물어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잠깐 기대했었다. 하지만 K는 망설이는가 하더니 술기운에 의지해 작정이라도 한 듯 말했다.


 "저보다 선배님이기도 하고... 저는 작가님 이야기의 90퍼센트가 다 맞다고 생각해요. 아니 99퍼센트가. 그런데 딱 한 가지..."

 "한 가지 뭐요..?"

 "한 가지..."


정적이 흘렀고 우리가 앉아 있는 합정동 이자카야 2층 창문으로 시원한 여름 바람이 새어들었다.


 "그게 뭐냐면요. 작가님이.. 내가 촬영 많이 한다고 하면서..."

 "그렇죠.. 잔소리가 많았죠?"

 "그러면서 했던 말이....

"내가 또 뭐라고 했어요?"


또다시 정적이 흐르고 난 뒤, 그가 말했다.


"그게요.. 내가 촬영해서 프리뷰 한... A4 종이가 아깝다고 했어요.."

 "..???"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어떤 작가가 그랬어요? 내가 그랬다구요? 아이 정말, 정말. 나쁜 년이네요. 정말 막말했네요."


나의 반응에 K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슬퍼졌다. 나는 그의 반응을 살폈다.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내 앞에서 천천히 고개 숙이더니, 잠시 후 굵은 그의 뿔테 안경 아래로 눈물이 떨어졌다.


 한 남자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농담으로 가장했던, 가시 돋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사죄하는 심정으로 앉아 있었다. 내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누군가의 통증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아이, 참. 술에 취했네. 왜 이러나 모르겠어요... 술 먹어서 그래."

 "....."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눈물을 닦아내는 술 취한 그의 진심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언젠가  하지 말았어야 할,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던 나를 보았다. 조금 길게 그가 울고 나서 자세를 고쳐 앉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미안해. 피디님. 내가 안아줄까요?"


 




잠시 후 나와 다른 작가는 여자 친구가 없어 방송에 너무 올인한 탓이라며 소개팅 주선을 약속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느라 늘 미안하다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던 K는 그저 좋은 방송을 만들고, 능력 있는 연출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나는 진짜 몰랐을까?


최선을 다해 촬영하느라 늦어지고, 더 많이 고민하느라 편집 시간이 늦어진 것조차 미안하다고 말했던 그였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늦어지는 스케줄을 이유로 이런 핀잔을 적잖이 했을 것이고, 그런 이야기들이 쌓여가는 동안 조금씩 더 많은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남자의 눈물 앞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다. 싫어하지 않는 친구이고 동료라면 더욱 우리는 뭐라도 하고 싶어 진다. 서툰 위로를 시작할게 될 때 어떤 문장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언어 이해가 비슷한 사고를 나눠왔던 사이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한 마디 했을 것이다. '괜찮아, 울지 마. 아냐 울어. 울어도 돼. 실컷 울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것이 늘 내가 해오던 위로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사고 체계가 다른 남자의 눈물 앞에선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에 손을 댄다. 그저 조용히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다. 체온을 나눈다는 거대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외로운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는 남편이 삶의 뿌리 같은 할머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도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옆에 앉아서 그냥 어깨에 손을 대고 있었다.


언어는 한낮 초라한 유희처럼 느껴지는 날이었다.

나는 그냥 같이 울었다.






외로운 남자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니콜 크라우스가 쓴 장편 소설 '사랑의 역사'의 주인공 레오폴드 거스키다.


레오폴드 거스키는 1920년 8월 18일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폴란드에서 자랐다. 폴란드에 사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학살 대상이었던 그는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사랑하던 소녀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질 때 소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몰랐던 소년은 살기 위해 숨어 지내다가 긴 세월이 지나 사랑했던 소녀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의 아들이 다른 남자의 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살아 있는 한 다시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던 소년은 어쩌다 보니 정말 그렇게 평생 외롭게 늙어갔다.



열쇠 수리공으로 살았던 레오는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외로움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에 사로잡혀 환상 속에 살던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 나의 살아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사람은 누굴까, 궁금하다. 굳이 내기를 하자면 중국집 배달 소년에게 걸겠다.


- 나는 남들에게 나를 보이려고 애쓴다. 밖에 나갔다가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주스를 살 때가 있다. 가게에 손님이 너무 많으면 잔돈을 다 떨어뜨리기도 한다.


- 몇 달 전 신문에서 광고를 하나 봤다. "데생 수업에 누드모델 구함. 시간당 15달러." 너무 좋은 내용이었다. 진짠가 싶었다.


- 나는 앞줄에 앉았다. 목이 뻣뻣해지고 발기되었다가 오그라들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자리다. 나는 추잡한 남자가 아니다. 그저 실물 크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 소설 <사랑의 역사> 중에서



살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사람이 누구일까를 고민하면서도,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며 동전을 떨어뜨리던 레오. 누드모델이 되어 시선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은 '실물 크기로 살아가고 싶은' 그의 간절한 생존 의지였을 것이다.

 

레오가 감정이 주는 고통을 육체에 분산시키는 방법은 그만의 인체 분해도 같은 것이었다. 심장마비를 한 번 경험하고도 다시 살아난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장기를 가슴의 통증과 연결하기도 했다.



- 내가 죽는다면 심장 때문이리라. 나는 되도록 가슴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조심한다. 어떤 일이 충격을 줄라치면 관심을 다른 쪽으로 유도한다. 예컨대 내 창자 말이다. 그런 기관들이 잠시 기능을 멈추었을지는 몰라도 늘 다시 움직이곤 한다. (중략)  매일의 작은 모욕감은 주로 으로 받아들이다. 다른 상처는 또 다른 곳으로 받아들인다. 췌장은 사라진 것에 대한 충격을 받아들이려고 남겨둔 부분이다. 그런 충격이 너무 많고 췌장이 너무 작기는 하지만, 그러나 췌장이 얼마나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안다면 당신도 놀랄 것이다. (중략)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오른쪽 신장이 맡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느끼는 실망은 왼쪽 신장이다. 개인적인 실패는 창자의 몫이다. 굳이 의학적으로 정확한 의도는 없다. 그렇게 잘 생각해둔 것도 아니다.


// 소설 <사랑의 역사> 중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나의 장기들을 점검했다. 심장 질환으로 병원에 다니유년시절의 나는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때면 스트레스가 혈류를 따라 심장까지 가지 않기를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하루의 모욕감들을 떠올려 봉지에 담아 생각 밖으로 던져버리던 열일곱의 나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시선과 누군가의 한 마디를 보자기에 싸 두는 연습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나의 시간들이 레오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 죽을 것인지를 상상하고 기다리던 레오에겐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알마'였다. 소년이었던 그가 알마라는 여성에 대한 사랑을 담아 '사랑의 역사'라는 소설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번졌다가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다시 그의 앞에 도착하게 된다.


정말 생의 끝에. 긴 세월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는 터널의 끝에서 - 레오는 알마를 만난다. 생각도 못했던 '알마'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소녀였다.


이름 없이 죽어가던 노인의 인생을 알고 있다는 어린 알마 앞에서, 레오는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삶의 흔적을 확인하게 된다.



- 가슴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조금 더 있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거야. 그녀의 이름을 크게 말하고 싶었다. 그 이름을 말하면 즐거워질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녀에게 이름을 준 것이 바로 내 사랑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잘못된 문장을 선택할까 봐 두려웠다. 그 아이가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그 아이를 두 번 쳤다. 그리고 두 번 더.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다른 손으로 그 아이를 두 번 쳤다. 그 아이가 내 손가락들을 움켜쥐었다. 나는 그 아이를 두 번 쳤다. 그 아이가 한 팔로 나를 감쌌다. 나는 그 아이를 두 번 쳤다. 그 아이가 두 팔로 나를 안았다. 나는 더 이상 치지 않았다.


  "알마." 내가 말했다.

  소녀가 말했다. "네."

  "알마." 내가 다시 쳤다.

  소녀가 말했다. "네."

  "알마." 내가 말했다.


  소녀가 나를 두 번 쳤다.


// 소설 <사랑의 역사> 중에서






어떤 위로라도 해달라고 누군가 내 팔을 두 번 친다면. 나 역시 손을 내밀 것이다. 나의 손은 아무 거부반응 없이 그 손을 잡을 것이고 '함께'라는 단어를 체온으로  대신할 것이다. 이것이 위로의 출발이다.


그래도 내 팔을 두 번 친다면, 다음엔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힘껏 꽉 잡을 것이다.

나눠줄 것은 '힘내'라는 소박한 응원뿐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라면서. 


그런데 또다시 내 팔을 두 번 친다면. 나는 그를 안아줄 것이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나의 포옹으로 경건한 기도를 대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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