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라는 단어는 춥다.
더 추운 말은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이었다. "그런데 난 나의 결핍을 알고 있어요!"
부족하다는 것은 절대적일까. 혹은 상대적일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너의 결핍이 너를 휘청거리게 할 때 - 너의 앞에 있는 있는 내가 더 가진 게 없다는 걸 알면 - 그것이 너에게 어떤 용기라도 줄 수 있을까.
20대의 결핍은 절대적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알 수 있는 결핍이었다. 그런데 나이라는 게 쌓이면서 생각하게 됐다. 나의 결핍은 누군가와 비교된, 그래서 순위를 나눈,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의 우위에 있는 결핍일지도 모른다고.
완벽해질 수 없는 미완의 존재로 태어나 살면서도 누군가와 비교해 점수를 주는 오랜 습관은 그렇게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아무리 계단을 올라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안다. 고개만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채움의 계단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나의 유한한 노력은 무한하고도 원대한 욕심 따위를 채울 수 없다는 것도.
- 나의 결핍을 알고 있어요. 나는 결핍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네가 전해준 한 문장 뒤에서 나는 고민한다.
너의 결핍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는 나의 오만함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그냥 웃는다.
20대를 지나면 알게 될 거라는 조언조차 하기 힘든, 그런 나이를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쓴다.
-나도 나의 결핍을 알고 있었어. 나 역시 결핍이 많은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