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로칼랭 Aug 23. 2023

일 년에 딱 하루 어느 날이었어

 

<그런 날, 어떤 하루> 




일 년에 딱 하루

어느 날이었어          




 우리 집 창가에는 매일 봐도 똑같은 식물이 하나 살아.

 정말 똑같아. 매일 봐도 달라진 게 없어. 

 가끔은 너무 똑같아서 혼자 중얼거렸어. 

 그냥 액자나 걸어 놓을 걸 그랬나, 내 주제에 무슨 식물이람.

 또 그런 생각도 했어. 

 매일 같은 모습의 널 ‘살아있다’라고 믿어도 거니. 내가 널 ‘키운다’라고 말해도 되는 거니. 

 괜한 짓인가, 투덜거리며 너를 째려봤었어.

 그런데 오늘 난, 가슴이 쿵 떨어졌어. 그래, 정말 쿵! 했어.

 쭉쭉 뻗은 선인장 같은 너의 커다란 줄기 아래, 예쁘고 부드러운 줄기가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거야.

 너는 누구니. 언제 어디에서 와서, 여기 뿌리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거니.

 난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어. 

 미안해.

 다시 말했어.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거기에서 나오려고 애쓰는 걸 정말 몰라서 미안해.

 살아 있는 너를 의심해서 미안해.

 가려진 시간을 몰라봐서 미안해.


 만약 나한테 단어 사전이라는 게 있다면, 그 사전 맨 앞줄에 쓰이는 말은 어느 날이 될 거야.

 어느 날이라는 말은 정말 나를 깜짝 놀라게 하니까. 

 가끔은 무섭기도 했어. 내가 뒤통수를 맞을 때도 항상 어느 날이었거든. 

 배신자의 실체를 알게 되는 날도 그랬어.

 그런데 또 이상한 건 그런 거야. 내 심장을 뛰게 하던 날도 예고 없던 어느 날이었으니까.

 날 사랑하던 그 사람의 진실을 알게 되던 날도.

 엄마의 눈물을 이해하게 된 날도. 

 사랑하던 사람들이 떠난 날도.

 이상하게 모두가 어느 날이잖아.       

    

 그래딱 하루만

 오늘만 초라할게          


 가끔은 예상하지 못했던 슬픈 ‘어느 날’이 찾아와도 괜찮은 이유가 있다면 그게 바로 딱 하루여서일 거야. 

 달라지지 않는 액자 같던 화분이 변했다는 걸 나에게 속삭여준 하루처럼.

 우리가 더 이상 어제와 같은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하루처럼. 

 그래도 그게 하루여서, 이상하게 위로가 됐어.     

 말해줄게. 

 오늘은 나에게 어떤 하루인지.

 어제는 잘 어울렸던 옷이 오늘은 후줄근해 보여서 집을 나가기도 싫었던 하루였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카페에 앉았는데 갑자기 내가 궁상맞다고 느껴지던 하루였어.

 잘 차려입고 좋은 곳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있는데 기분이 막 나빠지던 하루였어.

 심지어, 초라하다는 생각이 숨 막히게 느껴졌어.      

 왜 그렇게 갑자기 내 마음이 이상해지는 걸까. 

 어딘가 멈춰버리는 것 같은 생각 말이야. 

 계획한 대로 열심히 하다가도 문득 바보같이 느껴지는 날이 있잖아.

 너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무서울 때도 있고. 

 맞아. 다 뛰어가는데 난 뛰어지지 않아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은 날.

 그런 날엔 자꾸 생각나. 초.라.하.다. 라는 말.

 왜 나는 이렇게 궁상을 떨고, 바보처럼 휘둘리고 있을까. 

 너한테 내 마음을 꺼내놓을 용기는 없고, 나한테 따질 용기는 더 없어.

 맞아, 처량한 아침과 지쳐버린 오후와, 쓸쓸한 밤에 다짐했어.

 일 년에 딱 하루오늘이 그날이라면 초라해도 될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