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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Sep 12. 2019

살떨리는 싱가포르 해고의 진실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정리해고, 희망퇴직 등의 단어가 종종 보인다. 경기도 안 좋고, 고용 안정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해고'에 관련해서는 미국 뺨칠만큼 싱가포르가 훨씬 접하기 쉽다. 말 그대로 해고 및 채용이 자유롭다. (.......) 이는 친기업 적인 성향을 가진 싱가포르 정부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용 안정성을 높여서 잡 마켓을 동결시키기보다, 임직원을 극도로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기업들의 고용 유연성을 높게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왔다.

이러니 비자 스폰서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시시각각 쉽지 않게 돌아간다. 

(1)로펌에서 일하다 1주일 노티스를 받고 해고 당한 프랑스 변호사.

그녀는 주재원 신분으로 싱가포르에 온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싱가폴 새내기(?)였다. 

유럽과 너무도 다른 싱가포르의 사시사철 고온다습한 날씨, 입맛에 맞지 않는 기름진 싱가포르 요리, 비싼 월세와 술 값 등에 질리고 치여서 싱가포르에서 지내는 것에 미련이 없는 상황이었다. 

로펌에서 실적이 가장 안 좋았던 것으로 공공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함께 근무한 것이 아니니. 그러나 그녀는 어느날,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들에게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나 회사에서 해고 통보 받았어! 1주일 부로 나가래!'라며 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경악해서 이유를 묻는 하우스메이트들에게 대답한 것은, 

'내가 퍼포먼스가 별로라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더라고. 안 그래도 나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거든? 다음 주면 실컷 바게뜨도 먹을 수 있으니 난 아무렇지도 않아. 잘 됐지 뭐.' 였다.

그리고 그녀는 1주일만에 짐을 다 싸고, 가족에게 줄 기념품 몇 개를 챙기고,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남아시아를 떠났다.


(2)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당한 인턴.

그녀는 말레이시아 - 터키 혼혈 인턴이었다. 3개월의 인턴 계약직으로, 퍼포먼스가 좋으면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자리였다. 큰 눈에 치렁치렁한 긴 머리, 성격도 순하고 조용조용하니 일하기에 나쁘지도 특출나게 좋지도 않았다. 근무한 지 2주 정도 되었을까. 그녀가 나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00, 말씀드릴 게 있는데 - 다음 주 쯤에 터키 여행을 3주 정도 떠날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

3개월 인턴 중에 3주 여행이라......... 업무에 타격이 꽤 있을거라고 생각하여 나는 우선 다음 날 바로 매니저에게 휴가 계획을 보고했다. 사실 반신반의 했다. 어쨌든 여긴 외국이고 매니저에 따라 가족 여행이나 휴가 계획 등에 극도로 자유로울 수 있으니. 어쩌면 선뜻 허가받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 말을 듣자마자 대노 한 매니저는, 계약서를 먼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와 맺은 계약서를 모두 확인하고 법적인 문제의 소지를 제공할 것이 없는 지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후, 내 매니저는 이것 저것 업무 진척 사항 및 팀 타임라인을 확인하고 인턴이 출근하기를 기다린 뒤 -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했다. (!)

"안녕 수피아, 00에게 네가 터키로 여행을 간다고 들었어. 다음 주 부터. 3주. 맞니?"

"안녕하세요, 네 맞아요. 갈 거에요. 가족 여행이라 제가 취소하거나 미루기는 좀 어려-"

"응 됐고, 당장 인력이 필요해 너를 채용한 건데, 다음 주에 3주나 터키 여행을 가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네?"

"00한테 듣기로는 네가 아직 실전 업무에 투입도 전이라고 하니, 더 시간낭비할 필요 없이 '오늘'이 너의 마지막 근무일로 해도 될까? 양해해줘서 고마워."

"아, 네........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몇 시간을 모두를 어색하게 만든 카오스 속에서 근무한 뒤 떠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 (프로베이션 - 수습 -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절차 없이 빠른 해고가 가능했다. 그녀는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걱정 없이 가족여행을 잘 다녀왔고, 그 뒤로 순탄하게 취업준비 중이라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다.)

(3)한 달 노티스를 받고 전화로 해고 당한 매니저

나의 빅보스는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온 케이스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본사와의 정기 콜이었다. 그는 갑자기 웃으며 회의실의 직원들 (나 포함)을 내보냈다. 원래는 다른 사람들 모두 콜에 참여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왜지? 

알고보니 본사의 임원이 1:1콜로 진행할 테니 다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한 시간 뒤, 그의 낯빛이 삽시간에 어두워진 채 자리로 돌아왔다. 살짝만 봐도 무슨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 포함 몇 명만 지목해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안 좋은 소식이 있어........아까 그 콜 말로는 ....... 해고하겠다네.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이젠....... 집 렌트한 계약이며 수도세 전기세 고지서까지 모두 정지하고 싱가포르로 왔는 데, 1년도 근무를 하지 않았는 데 어떡해야할지. 너희도 알아둬야하니 이야기하는 거야."

그는 전화로 받은 한 달간의 노티스에 대해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바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만한 짬에서 나온 침착함은, 그 상황에서 정말 멋있어 보였다.) 그는 비자 때문에 중국으로 일단은 돌아가야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온 셈이기 때문에 싱가폴로 최대한 빨리 돌아와 구직하겠다고 했다. 


(4)손을 절단하고, 싱가포르에서도 추방당한 방글라데시 건설현장 노동자

싱가포르 서쪽. 요즘도 건설업이 호황인지, 수많은 방글라데시/네팔/미얀마인들이 건설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적으면 수 십명, 많으면 천 명 가까이에 이르는 그들의 사연 중 하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가끔 불의의 사고가 터진다거나 안전 수칙 미준수로 인해 부상 및 장애를 입는 케이스가 있다. 그 경우 사내 절차에 따라 그를 고용한 회사에서 치료비 및 위로금을 주고 본국으로 송환 조치를 한다. 그러나 나라 별 환율 격차로 인해 가끔 그들에게 위로금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하루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그의 손이 절단되어 회사에 경고등이 켜졌다. 절차대로 그를 싱가포르 내 병원으로 보내고, 의료진의 검사를 받게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손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죽을 때까지 장애를 갖고 살게 되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고 위로금을 주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 때, 회사 내에서는 뭔가 수상쩍은 제보를 받게 된다. 

 사건 당시의 CCTV 및 증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위로금에 눈이 먼 그가 고의로 본인의 손을 절단한 사정이 발각되었다.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를 노린 것이다. 그는 회사 내의 중장비, 기계를 사용해 자신의 손을 여러 번 찍어내리며 다시는 치료가 불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을 때까지...... 

 이 일이 발각되자 회사 내에서는 그를 공식적으로 조사하였고, 그는 자백 후 해고 조치를 받아들여 다시는 싱가포르에 오지 못하게 되고 당연히 위로금도 받을 수 없었다. 


이 밖에도 인정 사정 없는 싱가포르의 해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싱가포르 기업 문화 자체가 전반적으로 쉬운 해고, 쉬운 채용을 표방해서인지. 


 유러피안인 남자친구와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다. 그의 팀에서만 3명이 1년 동안 해고 되었고, 나의 팀에서도 4명이 1년 동안 해고 되었으니. 프랑스, 한국에서 근무했을 때는 단 한번도 해고 당하는 사람을 본 적 없던 우리 앞에 드라마틱한 일들이 몇 달에 걸쳐 계속 일어나는 셈이다. 

그래서 혜믿스님처럼 둘 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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