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름 Jun 03. 2020

화교들이 부자가 되는 이유

사업을 하려면 이들처럼

7년 전. 말레이시아로 잠깐 영어를 배우러 갔던 대학부설 어학연수 클래스에서 우연히 라이를 만났다. 

라이는 나보다 5살은 어린 녀석으로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고 무작정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의 수도)로 와서 영어 공부 중인 중국계 말레이 인이었다. 친해진 계기도 웃겼다. 내 한국인 친구를 짝사랑해서 쫓아다니다 그 친구 덕에 안면을 트고 라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보기 드문 순진한 틴에이저였고 평범했다.


"뭐야! 그럼 넌 고등학교도 졸업도 안하고 영어 배우러 가족도 없이 혼자 여기 온 거야?"

"응. 아빠가 고등학교에서 똑같은 교육 받으면서 시간 낭비할 바에 차라리 빨리 여기로 올라와서 영어 배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라셔서. 어차피 난 좋은 대학교 가는 것보다 사업을 할 거거든."

"사업? 무슨 사업? 이렇게 어린 너가?"


 그는 중국어와 말레이시아어는 수준급이었지만 영어는 못 했고, 그저 성장기의 수줍음 많은 소년처럼 보였다.  그래서 '밥 먹다 국 뜨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학교 보단 사업을 벌일 거라 하는 라이가 이상해보였다.

'특이한 애네. 창업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사업보다 영어 공부를 빨리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들을 하며 라이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다가 라이의 누나인 페이도 만나게 되었다.

 

페이 역시 영어보다는 중국어와 말레이어가 훨씬 편한 화교로, 자기 몫의 비즈니스를 하고자 준비 중이라고 스스럼 없이 밝혔다. 한 치의 주저함이나 불확실함은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 역시 사업을 하신다고 했다. 그 때는 몰랐었다. 그 남매의 아버지가 말레이 건설업계의 큰 손이자 전형적인 화교 부자였던 것을. 


 한국으로 내가 돌아가고 3년, 5년, 7년이 흘렀다. 우연히 나도 싱가포르로 정착하게 되어 그렇게 연이 닿아 평소엔 잘 연락도 않던 라이 남매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좀 성숙해지고 영어도 예전보다 나아진 나를 보고 놀라워하는 남매들보다, 내가 더 충격을 받았다. 기억 속 수줍은 십대 소년소녀들은 없었다. 대신 말레이시아의 야심만만한 젊은 사업가들이 있었다. 명문 대학교는 아니지만 말레이 소재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페이는 명품 아이템 중개업을, 라이는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을 시작했다. 운과 실력을 밀어부쳐 전력투구한 끝에 사업이 순항 중이라고 귀띔했다. 어느 정도 기틀이 잡혔기 때문에 이제 각자 2번째 사업을 시작하려고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고 했다. 

 남매는 다시금 조건 없이 케이엘에 혼자 체류하던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본인 사업 파트너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나를 대동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온 가까운 친구'라며 본인들의 지인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에 내가 점심을 사자, 손님으로 말레이시아에 온 건데 그러지 말라며 고급 레스토랑과 와인 바를 순회하며 저녁을 대접했다. 그렇게 1주일 넘게 같이 있다보며 어느 정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왜 화교들이 동남아에서 이렇게 부를 몰고 다니는 지. 왜 사업이 성공할 확률이 실패할 확률보다 극도로 높은지.


일단 중국에서 건너온 문화인지 전통인지는 모르겠으나, 특유의 '체면' 차리는 호탕함이 있었다. '손님'을 마땅히 '대접'하는 마인드셋. 사람들 앞에서 상황의 유불리를 재지 않는 모습. 계산서를 받아서 오늘 내가 다 살게, 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메뉴판의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하는 여유'를 지향하는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실제로 사업 파트너이자 라이와 사적으로도 친한 친구인 화교 말레이시아인과 화교 인도네시아인도, 너무 당연하게 라이가 계산을 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

'왜 라이가 저녁 값을 다 내지....... 오늘 마신 와인만 해도 엄청 많은데. 얼마 나왔냐고 물어보고 각자 음식 값을 치뤄야지......'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나를 보고 눈치 챈 화교 인도네시안은,

"오늘은 라이가 내고 싶은 날인 것 같다. 우리 사이에 뭐. 걱정 말고 일단 둬라." 라고 걱정을 덜어줬다. 

추후 알고보니, 그런 식으로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가까운 이들에게 대접하고, 또 나중에 그 사람들이 알아서 보은하거나 대접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베푸는 것이 그들 간의 숨겨진 룰이었다. 나 또한 그들이 극진하게 잘 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라이와 페이 남매가 시작한 비즈니스에 돈을 받지 않고 도움을 주고 있다. 그들끼리 베품의 선순환을 믿고 서로 의지하고 밀어주는 암묵적인 게임 안에 참가한 것이다.


화교가 부를 축적하는 가장 유명한 이유는 역시 네트워크다. 한 달도 되지 않는 체류 기간 속에서, 나는 그들이 소개해 준 여행/건설/디자인 업의 큰 손, 창업가, 정부 고위직들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99%가 동남아시아 화교였다. 어떻게 네 나이에 이런 사람들을 다 아냐고 물어봤다. 

 인맥의 첫 시작은 역시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이미 사업가로서 뿌려놓은 인맥의 씨앗들이 그의 아들딸에게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의 친구, 아버지의 사업파트너, 어머니의 친척 등 소개를 해주고 소개를 받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실패가 오히려 더 어렵다. 라이와 페이도 인맥 형성에 적극적이다. 망설이지 않는다. 일단 만난다. 이러이러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아는 사람 있냐고 거침없이 묻는다. 약속을 했으면 지킨다. 그러니 평판이 좋아지고 절로 신뢰도가 쌓인다. 사업 상 중요한 거래처, 예비 고객, 이해 관계자와 사이가 틀어지도록 두지 않는다. 한 뼘 한 뼘 계속 좋은 인맥과 네트워크만을 쌓아간다. 그럼 거래처나 비즈니스 단에서 매력적인 기회가 안 오려야 안 올 수가 없다.


또한 이 들은 도움을 받으면 갚는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시련이 오거나 어떤 일이 생겨도 끌고 가려고 한다. 

정작 7년 전에는 라이의 짝사랑은 내가 아닌 내 친구였고, 페이와는 다섯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들이 나를 무슨 귀빈 모시듯 하는 게 얼떨떨해져 술김에 꺼냈다.

"너희 가족.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 우리 정작 예전에는 친하지도 않았잖아. 연락 끊긴 게 4년은 됐겠다." 

그러자 정말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2015년 기억나? 원래 누나랑 같이 한국에 가려고 했었는 데 일이 생겨서 나 혼자만 갔었잖아. 그 때 너도 학교에 아르바이트에 바빴는 데 서울 구경도 시켜주고 그랬었잖아."

"아니, 외국인 친구가 왔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그게 뭐 별거라고. 다 하지, 그런 건."

"그런데 내 여행 마지막 날에 너랑 네 친구가 나 공항에 바래다 주겠다고 왔었잖아.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는 데. 새벽부터 데리러 왔다가, 엄청 뛰었는데도 5분 차이로 비행기도 놓쳤었고. 그 때 당황하는 내 앞에서 너랑 네 친구가 비행기 재예약도 물어봐주고, 다른 호텔도 다 찾아주고, 모든 게 해결될 때까지 약속도 미루고 같이 있어줬던 거 기억 안나? 우리 가족은 지금도 기억하는데."

요지는 그 뒤로 우리 사이의 친분이 얼마나 두텁고 얇고를 떠나 그냥 무조건 나에게 잘해주면 된다, 는 그런 이상한 마음이 생겼다는 거다. 심지어 나는 그 사건이 있었는 지도 잊고 있었는 데. 그 뒤로 라이는 짝사랑했던 내 친구보다 나와 연락을 더 하게 되었고, 우린 꽤 친하다고 믿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추후 사업을 할 거라면 언제든지 얘기해달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얘네는 도대체 언제 쉬는 건가......... 7년 전에 공부하기 싫다고 수영장에서 몰래 놀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린 나이인데도 끊임없이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주말에는 술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지만, 그것 조차 본인의 사업 파트너들과 함께 사업 얘기를 하며 술을 마시거나 가족과 비즈니스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에서 비싼 저녁을 함께하는 듯 했다. 스쳐 지나가는 많은 기회들을 사업적인 성공과 연결시키기 위한 태도가 습관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 밖에도 술을 잘 마셔서 어딜 가도 편한 대화를 오래 할 수 있는 점, 어렸을 때부터 사업 및 돈 관련 교육을 집안 어른들에게 듣고 자란 점,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지만 가격 네고, 계약 흥정 시에는 가까운 사이여도 철두철미하게 분리하는 태도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화교라고 다 같지 않고, 나라마다 화교의 특성이 다르다고 한다. 가정교육도 큰 작용을 한다. 내 친구인 라이와 페이는 개중에서도 유달리 의리있고 검소하게 성장한 케이스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살면서 만난 사업가 출신 인도네시아 화교, 태국 화교들도 비슷한 성향을 보여 추후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했다.

 

성공의 7요소인 끼, 깡, 꼴, 꾼, 꿈, 끈, 꾀 중 - 화교들에게서는 끈과 꿈, 깡은 공통 요소로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평생숙제 영어공부를 위한 노력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