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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Mar 03. 2021

코로나 -니가 가라, 하와이





코로나 확진자수가 폭발적으로 치솟자 뉴욕 시민들의 생활 반경은 전시의 봉쇄 수준과 비슷해졌다. 학교를, 그다음 스튜디오를, 그리고 직장을 못 가게 되었다. 학교 수업, 졸업식, 졸업 전시회가 전면 취소되었다. 귀국 비행기는 탈 수 있을까?, 혹 시기를 놓쳐 서울로, 집으로 못 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생활리듬이 깨지고 운동량은 줄어들고 그리고.... 몸무게가 늘었다.





뉴욕에서 귀국하여 집에 온 아들은 우리 부부가 묻지도 않았건만 부풀어 오른 자신의 몸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 눈엔 귀여워 보였으나 이런 종류의 판단은 보통... 본인이 쪘다고 생각하면 찐 거다. 그래도 먹어야지, 암만, 2년 만에 집에 온 건데 집밥 먹어야지. 나대로 생각했던 메뉴와 뭘 먹고 싶은지 아들에게 물어보아 구성한 메뉴로 아들의 삼시 세 끼를 차렸다.





말이야 쉽지 24시간 내내 한 칸짜리 방 안에서, 14일 동안, 탈출 시도 없이 지낸다는 것은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습니다.'가 된다. ‘방콕 생활’ 중에는 몸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되고 이는 소화불량과 바로 연결된다. 게다가 아들에게는 다이어트라는 난제중에 난제까지 겹쳐 있었다. 자가격리를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자 아침 식사량을 줄여달라고 아들에게서 톡을 보내왔다. 아들과 나는 육성이 아닌 톡으로 대화를 나눴었다. 코로나가 그리하도록 명령했으니.





다음날부터 아침 식사량을 줄였다. ‘더’ 줄여주세요라고 톡이 왔다. ‘더’ 줄였다. 그다음 날, ‘좀 더’ 줄여주세요라고 톡이 왔다. ‘좀 더’ 줄였다. 그다음 날, ‘좀 더 많이’ 줄여주세요라고 톡이 왔다. ‘좀 더 많이’ 줄였다. 크림치즈를 바른 플레인 베이글을 뺐다. 치즈 한 장 올린 호밀빵으로 바꿨다. 빵을 없앴다. 과일을 뺐다. 커피와 달걀이 남았다. '내일은 커피만 주세요.'라고 아들에게서 톡이 왔다. '앙대! 더 이상은’, 내가 답을 보냈다. 아들로부터 대답이 없다. 그다음 날부터 자가격리가 끝날 때까지 아침은 삶은 달걀과 커피 한잔이었다.





아침식사 변화 과정





며칠이 지났다. 아침 식사량을 줄인 것만으로는 ‘한 칸 방콕 생활자’의 소화작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밥을 볶거나 국수를 비비고 말던 간단한 점심마저 없앴다. 그래도 저녁만은 제대로 먹자고 아들과 의논되었다. ‘제대로’ 된 집밥,  어느 평범한 하루 중 평범한 한 끼,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 어느 집에서도 먹을 법한 집밥을 나는 차렸다.






어느 날 점심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 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산울림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가사 중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소녀가 세월을 길게 걸어와 노래의 주인공, 어머니가 된 나는 얌전히 냉장고에서 꿀잠 자고 나온 고등어를 구워 아들의 저녁밥을 차렸다. 고등어구이를 먹을 땐 된장찌개가 국룰이지. 수육 삶을 때 된장을 크게 한술 떠 넣어 고기의 잡내를 없애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 대령이요.





집밥 ,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더덕을 칼등으로 잘근잘근 두드린 후 양념장을 얇게 발라 약하게 달군 팬에 구웠다. 그대가 좋아하는 더덕구이 요기 있소. 올해 담근 오이지는 정말이지 내 생애 최고였다. 신이 잠깐 마실 와서 도와주었음에 틀림없는 이 오이지로 만든 냉국과 무침은 아들이 좋아하는 여름 반찬이다. 살짝 쪄서 밀봉하여 보관했던 보리굴비는 가시를 발라낸 후 들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살며시 구워냈다. 향신채를 넣어 끓인 물에 오겹살을 살짝 데쳐 기름기를 쫘악 뺀 후 순한 양념에 무쳐 뜨거운 불맛을 입힌 돼지고기 볶음도 만들었다. 따로 볶아낸 곁들임 야채와 아삭이고추 된장무침으로 삼합을 이룬 돼지고기 볶음 또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저녁밥





이렇게! 나름! 신경을 써서! 작은 아들의 밥을 차리는 나에게 큰아들이 수시로 시찰용 톡을 보내왔다. 동생에게 어떤 밥상을 차려 주었는지 묻는 톡이 오면 별 싱거운 소리 다 듣겠네라고 구시렁거리면서 나는 또 그걸 구태여 시시콜콜 보고했다. 그러면 큰아들은 또, 이건 어쨌고 저건 어쨌고 하며 콕콕 쪼는 톡을 보내왔다. 심지어 밥상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이보시오, 그대에겐 동생이지만, 나에겐 아들이라오.'라며 큰아들의 요구에 반항했다. 보기 드물게 사이가 좋은 형제 사이인건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지만, 이건 아니지, 선을 넘네 넘어. 밥상 사진을 찍어 보고까지? 그 어려운 걸 나는 또 해냈다. 대부분의 집밥은 차리느라, 먹느라 바빠 깜박하고 지나쳤지만 그래도 몇번은 찰칵찰칵 집밥 사진을 찍어 큰아들에게 날렸다.





성실히 메뉴 참견을 하던 큰아들은 어느날, 급기야, 내 고심의 밥상을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한마디로 팩트 폭격을 했다. 집밥에 '독창성'이란 수식어가 가당키나 한가?  어디에나 있고 어느 때도 있는 것이 '집밥'의 정의가 아닌가? 그럼 뭐 방풍나물을 염소 창자에 채운 순대볶음이면 창의적인가? 나 원 참.  





큰아들과 톡을 나누던 폰을 내려놓고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작은 아들에게 그동안 차려준 밥상이 어떠했더라? 된장찌개와 밥, 북엇국과 밥, 콩나물국과 밥, 소고기 뭇국과 밥, 청국장찌개와 밥, 김치찌개와 밥. 밥, 밥, 밥이었다. 아들이 뉴욕에 혼자 살며 그리워했을 법한 밥, 밥, 밥을 차려줬는데, 혹시 아메리칸 스톼알을 해줘야 하나? 너무 밥, 밥, 밥이었나? 팔랑귀인 나는 큰아들의 지적에 양쪽 귀가 크게 팔랑거렸고 얼굴이 붉어졌다. 장바구니를 들고 황급히 정육점으로 굴러갔다. 매쉬드포테이토와 구운 야채를 곁들여 고기를 구웠다. 스테이크가 메인인 저녁밥 사진을 찍어 큰아들에게 날렸다. '이보시오, ‘독창적 집밥’이란 신박한 단어를 구사하시는 양반! 내 나이가 얼만데, 그런 어려운 걸 요구하시오. 신박한 거 그런 거 나는 몰러유, 그대가 만드시오, 그 창의적 집밥.









이쯤에서 소환하는 추억돋는 영화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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