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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Feb 24. 2021

코로나 - 무기력한 집콕 생활





슬기로운 집콕 생활? 그거슨 어느 나라 이야기?





아침이면 눈꺼풀을 끄집어 치켜올린 다음 침대를 빠져나온다, 진흙으로 꽉 찬 난파선을 수심 깊은 바닷속에서 건져 올리듯이. 양말에 발을 쑤셔 넣고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간다. 물을 조금 마셔본다. 몇 모금 홀짝거리다 냅다 치워버린다. "물이 몸에 좋다며, 몸에 좋은 것들은 왜 이렇게 쓰거나 시거나 밍밍하거나 그런 건데, 맛이 없잖아 맛이." 전날 소소하게 손빨래하여 실내 건조시켜 놓았던 손수건, 양말, 행주 따위를 걷어 챙긴다. 집콕에서 스트레칭은 필수라고? 스트레칭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두 손과 두발 중 여기저기를 조금 꼼질거려본다. 에잇! 그냥 하던 대로 살자, 숨만 쉬며 살자, 손가락과 발가락 까닥거리길 집어치운다.





커피를 한잔 내린다. 크아 원두 갈리는 소리 좋다야. 크아 캭캭! 내적 감탄을 연발하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 거린다. 밤사이 다들 무탈하신지 폰으로 이 세상 안부를 물어본다. 계란 삶을 물을 준비하고, 냉동실을 꽉 채운 빵통들을 뒤적인다. 오늘은 어느 빵을 먹어볼까? 아침에 뜬 새우눈이 처음으로 반짝거린다, 아주 조금.






집에서 만드는 빵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후 뒷정리를 한다. 집안에 있는 창문을 죄다 열어젖힌다. 코로나 시대에는 환기가 필수라니. 베개를 탕탕 두들기다 뭔가 아쉬워 이불에다 대고 냅다 강력한 스매싱을 날려본다. 아침에 일어난 후 처음으로 숨이 트인다, 아주 조금. 내 팔만 아프다, 결국은.





TV를 튼다. 완벽히 두 동강이 난 정치판 소식, 집방&먹방, 그리고 트롯으로 사이도 좋게 3분의 1씩 방송시간을 나눠 가진 프로그램들을 흐리멍덩한 눈으로 건너 뛰노라니 내적 울화가 솟아오른다. 심호흡을 하며 애써 화를 다스려본다. 와룡선생의 '천하 3분 지계'도 아니고, 저 3가지 주제를 벗어난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 같은 건 방송국의 계산 속에도 피디의 머릿속에도 없는 듯 하니 내가 떠난다 떠나, TV 앞을. 듣기 좋은 꽃 노래도 한 두 번이지. 이 분들이 선 제대로 넘으시네.





그래도 미련이 조금 남아 넷플릭스로 건너가 본다. 프리미엄급으로다가 거하게 결제한 넷플릭스의 수많은 카테고리들과, 알고리즘으로 내 취향에 맞추어 준비했다는 콘텐츠들로 화면은 미어터질 지경인데, 볼 것이 없어, 보고 싶은 것이 없어, 재미가 없어, 없어.





넷플렉스 오리지널 "Narcos" [출처 : 구글 이미지]





킹덤? 좀비 영화라며, 무서워. 브레이킹 배드? 마약 영화라며, 마약 이야기는 한 번으로 족해. 더 이상은 노. 빨간 옷 입은 사람들 우르르 나오는 종이의 집? 너무 빨강이잖아. 나르코스를 다시 복습해봐? 벌써 두번 봤잖아, 됐어 그 정도면. 하우스 오브 카드 복습은? 아놔 정말, 프랜시스 너, 왜 다 된밥에 재 뿌렸어? 너 그 뭐시기 추문으로 강퇴당하니까 클레어가 막판에 혼자서 무리했잖아. 하우카는 끝 맛이 써, 써도 너무 써, 그 맛 다시는, 네버





넷플렉스 오리지널 "House of Cards" [출처 : 구글 이미지]





GOT를 복습? 아놔 진짜, 왕좌의 게임! 너 엔딩회는 심해도 많이 심했잖아. 너 정말 그러는 거 아니다. 산으로 가도 동네 뒷산 정도나 가야지, 한라산, 백두산까지 가버린 너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막! 응! 막! 내적 분노가 용솟음쳐. 너는 나에게 얼음땡을 주었어. 넌 우리 지구인에게 베리베리 빅엿을 주었어. winter is coming이라더니, 너의 엔딩은 내 맘을 꽝꽝 얼려버렸어. 시즌 내내 압도적인 사랑을 퍼부어준 우리에게 이런 수준이하의 엔딩신을 던지다니. 이 정도면 역사적 먹튀라구. 쌍알 마틴 옹, 당신의 엔딩신을 어서 써줘. 기꺼이 당신 신전의 숭배자가 될 거야, 다시 열렬히.






HBO original "Game of Thrones" [출처 : 구글 이미지]





뉴욕서 귀국한 작은 아들과 함께 나도 2주간 자발적 '준' 자가격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었다. 식단을 짜고 식재료도 미리 구매해 쟁여놓았다. 빵도 원 없이 만들어 보겠다며 밀가루는 키도 덩치도 큰 분으로 주문하여 일치감치 택배로 받아 모셔두었다. 그동안 소문과 추천으로 눈여겨 봐두었던 드라마와 영화 중 몇 개를 골라 찜해두었다. 이 정도의 물적, 정신적 양식이면 2주, 14일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내 참을성의 얄팍한 밑바닥을 나는 제대로 보았다. 먹고 치우고, 쉬고 먹고 치우고,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굳은 초심은 녹아버렸고, 지금까지 버텨낸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준비와 계획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 무겁고 느린 시간이 남았다. 하루가 240시간같이, 1시간이 600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식탐도 많고 혀가 달아서, 입안에서 굴리고 있노라면 구름 속에서 노는 것 같은 행복을 주었던 음식들이 밍밍해졌다. TV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듣고 싶은 음악도 없어졌다. 모차르트를 옆으로 치웠다. 쇼팽을 잠시 듣다가 쇼스타코비치로 넘어갔다가 이것도 저것도 치워버렸다. 북한산 탐방로에서 노동요로 끼고 다녔던 트롯 플레이 리스트에는 먼지가 쌓이는 중이다. 등산양말을 신으며 주머니에 챙겨 넣었던 에어팟은 집안 어느 구석탱이 있겠지 뭐.  





나는 쓰레기 버리러 이삼일에 한 번씩 집 밖에 나가고, 달걀이나 우유 같은 신선식품을 사러 며칠에 한 번씩 후다다닥 동네 마트에도 다녀오며 콧구멍 속으로 바깥바람을 수혈한다. 좁은 한칸 방에 꼼작없이 갇혀 지내는 자가격리 당사자 아들은 오죽할까 생각하니 급격히 미안해진다.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방에 갇혀있는 '해외 입국자', 작은 아들에게 톡을 보낸다. 지겹지? 그래도 우리 힘내자, 효력이 없어져 가볍기가 새털같은 격려의 말을 보내본다. 자가격리가 끝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들에게 물었다.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처럼, ‘구약’의 삼손처럼 어깨아래로 내려온 머리카락 자르러 미장원에 갈 거라고 아들이 답한다. 엄마는 뭐할 거냐고 아들이 예의 바르게 물어온다. 친구 만날 거라고 아들에게 답한다.





폰의 캘린더 어플을 켜서 자가격리 끝나는 날에 알 굵은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히 박혀있는  친구 이름과 약속 장소를 확인한다. 아들과 나는 자가격리 끝나는 날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 우리 그날, 아침 먹고 샤워하고 11시쯤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11시 58분에 신발 신고 12시 땡! 하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자!, 우리 그날 점심은 각자도생 하자, 연신 'ㅋㅋㅋㅋㅋ'를 주고받는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 하기....는 커녕, 심심해, 기운 없어, 싫다 싫어 코로나, 정말 싫어.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다들 잘만 하고 있다는데, 집콕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이 오조 오억개라고들 하는데, 왜 나는 짜증 지대로인 감방생활인지? 나만 그런겨? 다들 괜찮은겨? 나만 유독 힘들어하는 겨? 그런겨?   





표지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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