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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Jul 30. 2021

구기동에서 1

하늘의 별따기, 내 맘에 드는 집 구하기





2020년 늦가을, 정릉을 떠나기로 어렵게 마음먹었다.




불현듯 불어온 한조각 바람에 우리네 인생사가 어떻게 부대낄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이사온지 3년이 채 안되어 나를 이곳에서 몰아내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 그것도 소급 정책에 나는 화가 쌓였다. 떠나야 함을 뻔히 알면서도 내내 못 버리는 정릉에의 미련에 몸과 마음이 무거워 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이 짧지 않았다.




기왕 이사해야 한다면 이참에 땅을 사서 집을 지어 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 핫하다는 파주와 김포를 두루 둘러본 후 이사를 가더라도 북한산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정릉 인근에서 집 지을 땅을 알아보았다. 어느 중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정릉 3동의 양지바른 땅은 크기와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사장님과 같이 다녀온 후 혼자서 아침에도 가보고 비 오는 날에도 가보고 어스름한 초저녁에도 그곳에 가보았다. 그 땅은 건축허가 이전에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심의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기약해 줄 수 없다는 성북구청 건축과 직원의 말을 듣고 가슴에 그득히 찬 아쉬움을 쓸어내 버렸다.




등받이에 몸을 위태롭게 기대고  좌석을 구명줄인양  쥔채 마을버스의  좁은 좌석에 앉아 산길을 기어 올라가면 닿는 평창동의 땅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부부 둘이서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니 규모가 너무 커서 고심을 거듭했다. 엉덩이에 깔고 앉는 돈을 최소화하기로,  크기가   사람에게 적절한 (decent) 규모의 집을 짓겠다는  결심에도 불구하고  땅에서 마음을 거두기가 매우 힘들었던, 햇빛이 참으로 웅장했던 곳이었다.




크거나 작은 , 평지 혹은 언덕 위의 땅을 보던  사기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3개월이 지난 그때쯤, 나는  지쳐있었다. 종로구 동네 동네를  잡듯이 찾아 다니며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되는 곳들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기대치가 한껏 낮아진 시점이기도 했다.  지을 땅의 크기는 적절했으나 충분하지 않은 햇빛이 계속  마음을 주저앉히던  땅주인이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내게 직접 연락해왔다. 다음날 오전까지 계약을 하면 땅값을 얼마 깎아주겠다고 했다. 답을 미루고 다음날 여러 군데를 건너건너 알아보니 맹지였고 더구나 여러 소송에 얽혀있는 땅이었다. 구기동 맹지 사건에  뜨거워라! 크게 데이고,  나이와 체력이 땅을 사서 집을 짓기에는 한참  미친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이러다  명대로 못살겠다 싶은 의기소침 속에 집을 짓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주택, 빌라, 아파트로 눈을 돌렸다. 해가 넘어가 2021년이 되었다. 설이 지나고 다시 집을 보러 나섰다.




정릉동, 부암동, 평창동, 신영동, 홍지동, 구기동등을 돌아다니며 빌라와 주택, 아파트들을 많이도 보았다. 부암동 주민센터 인근의 주택은 내 로망에 가장 근접한 집이었으나 이사시기가 맞지 않았다. 협의를 시도하였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상명대 앞 신영동 언덕 꼭대기의 빌라는 기대와 함께 들어갔다가 의아함을 안고 나왔다. 정남향에다가 수많은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서있던 그 건물엔 이상하게도 곰팡이 냄새를 배경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냄새들이 진득이 배여 있었다.




남편과 여러 번 북한산 등반 후 하산하던 구기동 비봉길 어귀에 위치와 크기가 적절한 집이 나왔다. 집값이 인근 시세에 비해 조금 과하지만 일단 가서 집주인과 가격 흥정을 해보자는 맘으로 가 보았다. 한참 집값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던 시기여서인지 집주인은 내놓은 시세보다 오히려 더 받아야겠다고 하여 집값 흥정은 시작도 못했다. 오늘도 또 허탕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버스정거장을 향해 한참을 걷는데, 이사 날짜는 안 맞지만 한번 보겠냐며 부동산 사장님이 손을 들어 어느 빌라를 가리켰다.





거실에서 보이는  북한산 비봉





북한산 비봉이 등 뒤에, 쏘가리가 첨벙 대며 무리지어 뛰노는 냇물이 바로 앞에서 팔랑거리는 위치의 건물이었다. 북쪽을 향한 거실 창을 열었다.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후익 휘이익 내 폐를 활짝 열며 지나갔다. 남쪽 넓은 창을 장착한 부엌에는 햇빛이 미어터질 듯 들어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맘이 살랑거렸다.  





안방에서 보이는 북한산 능선


 



 표지 사진 : 구기동 집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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