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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Aug 12. 2021

그동안 즐거웠어 6

아페쎄 언박싱





퇴근시간에 맞추어 충무로의 수제 햄버거집에서 아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얇디얇아 입안에 넣으면 그저 녹아버리는 감자칩을 '후리'하게,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 축에 끼지 못할 정도로 번도 맛있고 고소한 패티도 만족스러운 햄버거집이어서 벌써부터 콩닥거리는 위장을 애써 달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경복궁을 지나쳐 막 교보문고 쪽으로 진입하는데. 저녁 먹기 전 잠깐 백화점에 같이 가시겠냐고 묻는 아들의 연락이 왔다. 그럼 그럼 당연하지요, Money talks!이지요. 아들과 나는 스타일, 패션, 뭐 이런 종류에 있어 합이 잘 맞는 편이다. 물건을 사도 좋지만 안 사도 좋고, 내 것이어도 좋지만 남의 것이어도 상관없이 이쁜 것, 멋진 것을 눈에 담는 기회를 나는 좀처럼 마다 하지 않는 편이다.





백화점 입구에서 만난 아들은 목표한 곳이 있는지 곧장 한 매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대문자 A의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힌 로고의 캔버스 백과 반달 모양의 숄더백으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아들은 머릿속에 이미 계획이 있었던지 단번에 진열대에서 부츠 한 켤레를 꺼내와 내 앞에 내밀었다.


한번 신어 보세요, 엄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들 : 아페쎄 매장에 온 목적을 아련히 드러내며 무심한 듯한 어조로]

아냐, 나 부츠 많아, 그거 다 신으려면 옴마 3백 살 까지 살아야 해 [나 : 진심으로 화들짝 놀라며]

일단 한번 신어 보세요, 여기 온 김에, 이쁘잖아요. [아들 : 엄마, 슬슬 넘어와 주시지요]

그 그 그럴까, 신어 봐도 될까, 그럼 어디 한번 [나 : 내가 정말 신발이 이뻐서 함 신어봐 준다. 신어는 드릴게]





[출처 ; 구글 이미지]





감자칩을 녹여가며, 햄버거를 혀 위에서 굴려가며 아들이 말했다, 취직한 기념으로 아까 그 부츠 사드릴 거예요, 지금 한국에 엄마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다니 조금 기다려 주세요, 해외에서 직구하는 방법을 찾아볼게요. 나는 의자에서 튕겨나가 바닥에 데구르르 구를 정도로 정말 놀랐다. 아니, 왜 그렇게 비싼 것을 나에게 사준다는 거냐고, 나는 빨간 내복이면, 그러면 최고인 거라고 말하며 아들에게 단호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아페쎄를 사준다는 아들의 말에 하도 놀라서 어금니 아래에서 대충 썰리고 있던 햄버거 번 조각들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후 며칠 내내 내 맘은 시끄러웠다. 아들이 나에게 사주겠노라는, 취직 기념으로는 과한 가격의 첼시 부츠를 거절하는 것이 엄마인 나로서는 마땅한데 그런데... 아들에게 전화해서 첼시니 부츠니 뭐니 하는 말은 다시는 입밖에 꺼내지 말고, 너도 이제 적금도 붓고 제 앞길을 쌓는데 주력해야 하니 다른 엄한데 돈 쓰면 안 된다고 잔소리 바가지를 한 바탕 퍼부어야 마땅한데 그런데 내 가슴이 자꾸 다른 생각으로 들끓었다.  





아페쎄 첼시 부츠의 각별한 아름다움 때문에 나는 아들을 만류하지 않는가? 미를 탐한다는 영역에서 나는 대체로 절제를 하지 않고 살아오기는 했다. 몇 년 전 아들과 같이 간 도쿄 여행에서 기가 막힌 색감의 자동차를 보았다. 도쿄 오모테산도 어느 골목에 주차된 그 차가 눈에 밟혀서, 몇 시간 뒤 온 길을 되짚어가서는 그 골목을 기어코 찾아내어, 또 보고, 뒤돌아서며 보고 또보며 내 눈동자에 그 자동차를 각인시켰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 보다도 더욱더 내 가슴을 뒤흔든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을 보기 위해 나 홀로 간 이태리 소도시여행에서 구태여 로마를, 바티칸을 일정속에 억지로 집어넣은 적도 있다. 바티칸의 그 많은 예술품중에서 오로지 '아테나 학당'의 찬란함에 미혹되어서였다. 대영박물관의 예술품이건, 서울 명동의 백화점 매장 물건이건, 길거리 가판대 위의 물건이건,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 나는 그들 사이의 경계를 모른다. 단순히 첼시 부츠의 기가 막힌 곡선에 혹해서 아들이 차려준다는 밥상을 나는 넌지시 기다리고 있는가? 어지간한 '반짝'거림은 죄다 싫어하는 내 눈에도 '광택의 정수'처럼 , 요부의 흑요석 눈처럼, 반짝거렸던 첼시 부츠에 미혹되어서인가? 말로는 그렇게 비싼 거 싫다고 하면서도 그런 이쁜 것들에 혹해서 아들의 과한 지출에 눈을 질끈 감는 염치없는 엄마인가 내가?  





오모테산도에서





이 모든 생각을 걷어내어 치우고 보니 '아들을 효자로 만들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보였다. 부모를 여읜 이 세상 모든 자식이 그렇듯이, 아주 먼 훗날 아들의 곁에 내가 없을 때 아들 또한 스스로를 불효자로 생각할 것임을 나는 안다. Please don't.  





엄마에게 이렇게나 멋진 부츠를, 이렇게나 과한 금액을 지불하여 사준 것을 아들이 잊지 않길 바란다. 부모님을 그리워할 때면 언제나 나는 부모님께 못한 것, 안 한 것들의 기억이 마귀들처럼 달라붙는 내 가슴을 쥐어뜯는다. 아들은 그러지 않기를, 엄마가 얼마나 기뻤는지 꼭 기억하기를, 그래서 나는 아들이 취직 기념으로 사준다는 '사치스러운' 부츠 선물을 드디어 심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랑이야 말로 사치와 동의어가 아니던가? 도무지 쓸데가 어디 한 군데라도 있는지 모르겠고 손을 자주 씻고 세정제를 틈틈이 발라야 하는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는 어떠한가? 내 사랑의 일부라도, 조금이라도, 표현되길 바라며 기꺼이 거대한 액수를 지불하는 다이아몬드 반지야 말로 사랑의 사치가 아닌가?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는 바이블의 저 문장 또한 사랑의 사치이다.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는 일반 노동자의 일 년 치 품삯에 해당한다. 이 신약 시대의 이야기는 너무 '올드'하여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가? 화재현장에서 자식을 구하고 주저 없이 자신의 생명을 대신 던지는 부모의 이야기는? 사랑을 위해 나라를 통째로 갖다 안긴 낙랑공주는? 잘 나가던 경력의 '단절'이라는 아주 비싼 값을 치르며 육아에 전념하는 엄마는? 보통의 부모들 또한 자식을 어지간히 키워 사회에 내보내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싱싱한 젊음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주름과 병치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식을 기르는 일에 20-50이라는 인생의 중간 토막을 다 베어내어 주는 셈이다. 아주 아주 사치스러운 사랑들이다.





아들의 머릿속에 엄마 아빠에게 잘한 기억만 가득하길 바란다. 엄마 아빠와 같이한 즐거웠던 시간들이 아들의 가슴에 꽉 차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주는 용돈을 넙죽넙죽 잘도 받는다. 그 돈으로 이쁜 백참을 사서 눈에 띄는 곳에 걸어둔다. 아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친구에게 맛있는 점심을 쏜다. 눈에 확 띄는 초록 양말도 사고, 평소 욕심냈던 어마무시하게 값비싼 버터도 산다. 내 자식이라는 단 한 조건이면 무조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자식의 입장에선 알 수가 없을 테니, 너로 인해 이렇게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아들에게 자꾸자꾸 알려준다.





몇 달 후, 스타일이 온 사방으로 주룩주룩 흘러넘치는 박스가 집에 도착했다. A. P. C.라는 세 글자만을 도도하게 새긴 상자와 더스트 백안의 첼시 부츠 한 켤레를 보는 순간 아! 이건 '빼박'으로 '언박싱각'이네!라는 생각에 얼른 부츠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아들에게 전송했다.








아페쎄 언박싱 샷






이 것은 사랑의 사치에 관한 글이다.





제목에 혹해서 들어온 분들, 언박싱인 듯 언박싱이 아닌 이글에 쏟아지는 그분들의 한숨소리를 피해 소심한 나는 호다닥 도망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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