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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Jan 25. 2023

말이 줄고 인상 쓰면 밥을 주세요

와이프의 '신랑관리 매뉴얼'

결혼식 다음 날, 일요일

서울 공덕의 세련된 호텔에서 짐을 풀었다. 월요일 새벽 비행기로 태국 코사무이로 떠나는데 여유롭게 가고 싶었고, 서울에서도 쉬고 싶었다. 와이프가 선택한 곳은 침구가 참 좋았다. 결혼해서 기분이 좋았었나. 신혼여행은 고민이 많았다. 바쁜 이 시기에 가야 하나, 내년 여름에 가야 하나... 사실 우리는 돈을 더 모아서 미국에 가고 싶었다. 2주 정도 여유롭게.


하지만 다들 지금 안 가면 절대 못 간다며, 신혼여행은 꼭 가라고 소리쳤다. 코로나 절정에 결혼했던 지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떠나왔다. 정말 '신혼여행'이란 대의명분은 엄청났다. 모든 업체와 고객분들께서 배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너무 바쁘게 살았던 우리. 합의한 테마는 '휴식'이었다. 먹고 쉬고 자고 웃다가 오는 계획을 짰다. 여행의 첫 일정은 '명상'. 연희동 골목의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이란 곳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체험하기로 했다. 고요 속에서 나를 찾는 시간이라... 말 많은 내가 꼭 가져야 할 시간 아닌가.


그전에 해야 할 것은 역시나 밥.

맛집탐지 성공

연희동 이곳저곳을 걷다가, 본능적으로 '여기!'라며 함께 지목한 곳이다. 둘 다 맛집 탐지 능력이 고도화되어 잘 찾는다. 기록과 추천을 보고 가는 것보다 경험과 본능으로 판단한 식당이 더 맛있었다. 내 결정을 애써 좋게 생각하려는 내 본능 때문일까...^^;;;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사장님의 공간이 참 포근했다. 분명 처음보는데 단골집같은 느낌. 대각선으로 다 시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흥분을 감추며 적당히 시켰다.

음식사진을 보고 놀랬다. 나는 파스타 면으로 하트도 만들어주고 그랬나 보다. 식당에서 먹는다는 느낌보다, 요리 참 잘하는 누나네 놀러 온 기분. 낮술 하기에 정말 분위기 좋다고 생각도 들더라. 안 그래도 사장님께서는 낮에 꼭 오라고 하셨다..^^;;

여행기록을 쓰려했는데, 신나게 음식 기록을 남긴다. 부드럽고 고소했던 메쉬드 포테이토. 이렇게 맛있는 감자요리를 처음 먹어봤다. 프렌치프라이와 눈을 감자가 내 인생감자였는데 순위가 바꼈다.

이건 주먹밥에 짭조름한 간장을 발라 구워냈는데, 씹을수록 밥의 단맛과 간장의 감칠맛이 돌아 입맛을 돋았다. 뭐랄까 애피타이져라 하기엔 무겁고, 마무리라 하기엔 끝없이 들어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결론은 두 접시를 먹어야 한 다는 이야기.

쫄깃한 돼지고기를 면과 함께 매콤하게 내어주신 요리인데, 사진을 보니 또 침이 고인다. 이날도 음식 앞에서 흥분하며 빨리 먹어버렸다. 나 때문에 매번 급하게 밥을 먹는 와이프에게 미안하다. 분명 이 글은 연희동의 명상 이야기로 맺으려 했는데, 왜 나는 야식예찬을 하고 있을까.


사실 이때 우리는 애써 숨겼지만, 분명히 감지했다. 다가올 식대의 위협을.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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