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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Nov 20. 2022

생각 파괴

부서진 것은 다시 고쳐도 처음 같지 않다

와인잔을 씻다 떨어뜨려 금이 갔다.

금 간 곳을 붙여 쓰고 싶지만 다시 와인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용도를 생각해보다 꽃을 넣어놓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금 간 와인잔에 꽃을 넣어본다고 와인잔이 돌아오지 못하고 와인잔에서 꽃병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꽃병으로 만들어진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쓸 수 있다.

금 간 와인잔에 꽃이 꽂혀있으니 불안하다.

결국 와인잔은 버릴 수밖에 없다.

와인잔을 살 때 얼마를 주고 샀는지도 생각하고 내가 이 잔으로 몇 번이나 마셨는지 누구랑 마셨는지 생각해본다.

이미 금 간 와인잔인데 버리기 아쉬워서 꽃도 꽂아보고 연필도 꽃아 보고 초도 넣어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위험한 금 간 와인잔은 버릴 수밖에 없다.

그냥 버리면 누군가 손을 베이게 할 수 있어 신문지로 싸서 버린다.

생각해보니 신문지가 없구나.

요즘 신문지 구하는 게 어렵다.

여기서 신문지 얘기하면 얘기가 다른 데로 흘러가니깐 더 이상 하면 안 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와인잔과 같이 한번 금가면 원래 생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보호한다.

생각이 흔들리지 않게 다양한 포장재로 고정해놓기 시작한다.

와인잔을 깨지 않고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포장된 상태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고 가만히 놓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상태면 이걸 산 이유와 전혀 맞지 않다. 물론 와인잔 자체를 수집하는 사람은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와인잔은 와인이 담겨야 와인잔이 되는 것이다.


생각도 상처받지 않고 금 가지 않으려면 아무 생각도 안 하면 된다.

혼자만 생각하고 아무런 외부 정보도 받지 않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생각에도 모순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

이런 과정은 생각에 금이 가고 깨지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금가고 깨지는 것이 두려워 점점 단단하게 고정하면서 보호하다 보면 엄청난 고정관념이 생기고 이를 넘는 신념이 생기게 된다.

고정관념과 신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때로는 스스로 생각을 파괴해보자.

가지고 있는 프레임을 깨부수고 생각을 넓게 하자.

생각이 넓어지려면 스스로 정해놓은 제한적인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살아올수록 울타리는 더 견고해지고 높아질 것이다.

이런 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진다.

문을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문은 내가 나가려는 용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오게 하는 용도이다.

문을 통해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이 들어올 수 있는데 엄격한 문지기가 판단하여 대부분 생각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생각을 파괴한다는 것은 울타리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제 문지기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고 생각들이 몰려들고 울타리 안에 있는 내 생각도 나가기 시작한다.

어느 생각이 원래 있던 생각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생각들이 서로 섞이고 시간이 지나면 질서를 잡게 된다.

이제는 생각이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는구나라고 스스로 놀라고 있다.

허황되게 좋은 생각도 있겠고 부정적 생각도 있을 수 있다.

생각을 제어할 줄 알면 모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지고 있는 생각만으로는 생각이 커지지 못한다.

다른 생각도 겪어봐야 하고 내가 가진 생각도 비교해봐야 한다.



생각을 해야지 감정이 생긴다.

생각을 해야지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다.

감정을 느끼려면 생각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생각들.

세상에 모든 생각이 반드시 옳은 생각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 통계적으로 많은 생각을 적용해야 해결되지는 않는다.

생각을 바꾸고 합치고 결국엔 파괴해야 새로운 생각이 싹틀 수 있다.


생각을 파괴하는 것은 생각 영역을 파괴하는 것이고 고정되어 있는 관점을 파괴하는 것이고

숙달된 생각 방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파괴해야 미련과 아쉬움을 버릴 수 있다.

아무리 원래대로 복원해도 원래와 똑같지 않고  비슷하게 된다.


파괴해야 새로워진다. 당신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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