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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Mar 18. 2023

미래가 불안하면 양파를 볶자

캐러멜라이즈 양파

주변에 미래가 불안하다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살면 뭐가 될까요?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논문을 쓸 수 있을까요?

박사과정에 가는 것이 맞을까요?

끝까지 하면 뭐가 될까요?


살아가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결과가 확실하지 않을 때가 있다.

박사까지 공부하면 뭐가 달라지기는 하는지, 새로운 자격증 따면 인생이 바뀌는지 궁금해한다.

그럴 때는 일단 하고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 이런 고민은 시작하고 난 후에 과정 중에 힘들 때 하는 고민이다.

과정이 힘들 때 굳이 이런 과정을 버티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지,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힘이 부칠 때는 그냥 타협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난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굳이 박사를 위해 논문을 써야 하는지도 생각하고 힘들게 박사가 되면 진짜 달라지는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고 왜 이런 과정을 시작했는지 후회도 된다.

학위가 없어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는데 그냥 수료만 하면 되지 않을지 다른 사람은 수료도 못하는데 이 정도 하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타협한다.

어쩌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다.

제일 많이 뛴 거리가 10Km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겨우 10km 정도 뛰어봤다고 하는 것이 우스워보일지 모르겠지만 난 힘들게 뛰었다.

그리고 그 이후 뛰지 않는다.

심지어 잠시라도 뛰는 것이 싫어 약속도 일찍 나간다.

약속보다 일찍 나가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뛰지 않아도 되고 건널목을 건너려고 뛰지 않아도 된다.


10km를 뛰기 전에는 상당히 자신이 있었다.

겨우 10Km라고 생각했지만 1km를 열 번이나 뛰어야 하는 것이고 100m를 100번 뛰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어마어마하게 긴 거리로 느껴졌다.

반대로 시속 10km로 한 시간 뛰면 된다고 생각하니 차를 타고 시속 10km로 달릴 때를 기억하면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어디서 들은 것이 생각나서 빨리 뛰면 나중에 힘들 것 같아 남들과 같이 천천히 뛰었다.

2km 지날 때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왠지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점점 더 숨은 차오르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왜 뛰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걸 다 뛰고 나면 내가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도 생각했고 다른 사람은 왜 그리 쉽게 뛰는지도 생각하면서 저 사람은 타고난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뛰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도 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끝까지 못 뛸 것 같아 중간에 포기하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느 순간 1km 남았다는 표지를 봤을 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라는 생각보다 내가 9km를 뛰어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10km이지만 한 발씩 뛰다 보니깐 어느새 9km까지 왔고 조금 더 뛰면 완주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왜 뛰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끝까지 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10km를 완주하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면 양파를 볶아보자.

욕심내지 말고 양파 3개를 까서 작게 자른 다음에 프라이팬에 굽기 시작하자.

양파 캐러멜라이징 하는 방법 찾으면 엄청나게 자세한 레시피를 찾을 수 있다.


처음 양파를 볶기 시작하면서 중간에 눌어붙지 않도록 가끔 뒤적거려 준다.

어느 순간 양파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프라이팬 앞에 서서 양파를 계속 뒤적거려 줘야 한다.

양파 색이 변할 때까지 계속 저어줘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팔이 아파지기 시작할 것이다.

양파는 아직 하얗고 내 눈앞도 같이 하얗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협하게 된다.

굳이 양파를 볶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양파는 생으로 먹어야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할 것이다.

힘들게 양파를 다 볶으면 뭐가 좋아지는지에 대해 혼자 마음속으로 토론을 벌이기까지 한다.

여전히 팔은 아프고 이젠 어깨가 아파지려고 한다.


임계점.


어느 순간 양파는 색이 바뀌기 시작한다.

처음에 수북했던 양파가 반으로 줄어들었을 때 사진이다.

변함없는 색을 자랑하던 양파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변화가 되기 시작하니깐 여태껏 내가 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힘을 내서 좀 더 열심히 저어 본다.

그래도 팔은 계속 아프고 어깨도 아프지만 변화가 일어나니깐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하지만 색은 빨리 변하지 않고 다시 타협 단계이다.

이 정도 색이면 이쁘고 맛있어 보이는데 굳이 끝까지 볶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난다.



이제는 내가 포로로 잡혀서 해적선 제일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다는 생각으로 주걱을 젓기 시작할 때이다.

앞도 보이지 않고 깜깜한 바닥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노젓기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주걱 젓기를 한다.

해적선 포로에겐 어디선가 희미한 빛이 보이면 노젓기가 끝나는 시간일 것이다. 그다음에 해적선에서 땅으로 올라와서 더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노젓기가 끝났다는 것이 일단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양파색이 원하는 색으로 변했다.

이젠 노젓기 아니 주걱 젓기를 끝내도 된다.

조심스레 통에 옮겨 담았다.


혹시 이런 체험을 해보고 싶으면 최소 2시간 정도 비워놓고 해야 한다.

중간에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주걱 젓기만 해야 한다.

이때는 양파와 싸우는 시간이기에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면 양파가 바로 공격할 수 있다.

다 볶고 나면 이젠 양념이 생겼다.

빵이랑 먹어도 맛있고 밥이랑 먹어도 맛있다.

특히 고기랑 먹으면 더 맛있다.

하지만 양파볶음만 먹지는 않는다.

난 왜 이걸 만들었을까?

양파볶음만으로 아무것도 못하지만 다른 음식과 만나 더 맛있게 해주는 양념을 만든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끝이 보이지 않아도 시작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끝까지 못 갈 수도 있고 끝까지 안 가도 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시작했으면 한번 끝까지 가보자.

중간에 타협하지 말고 (사실 타협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다.) 가다 보면 결국엔 도착하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해서 거창한 미래가 기다리거나 성공이 쥐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양파를 볶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만든 건 배부른 음식도 아니고 맛있는 요리도 아닌 그냥 기본적인 양념이었다는 것이다.

양파볶음을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이 얼마나 차이가 날 지는 모르지만 가진 사람은 여유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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