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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Jul 16. 2024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노영심 노래

오랜만에 예전 노래가 나와서 들어봤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걸 알 수 있다.

1992년에 나온 노래인데 노래 가사가 요즘에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 있다.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 노영심


나를 처음 본 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 

그때 귀걸이를 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내 생일이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아요 


(그때는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녀야 했다. 아니면 수첩에 적어서 들고 다녔다.

물론 나도 전화번호는 거의 100개 이상 외우고 있었다.

자주 전화하는 곳은 외울 수밖에 없다.

전화기를 하나씩 번호대로 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화걸 때 처음에 여보세요 하는지 죄송합니다만 그러는지 

번호 8자를 적을 때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쓰는지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안에서 내 표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요즘은 번호 8자를 손으로 쓰는 것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같이 다니다 보면 혹시 볼 수 있을 때 외워라.

그리고 그때도 지하철이 무려 4호선까지 있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모습까지도 기억하는 남자 

같이 걷던 한강 인도교의 철조 아치가 6개인지 7개인지 

그때 우리를 조용히 따르던 하늘의 달이 초생달인지 보름달인지 


(한강 인도교가 도대체 어느 다리일까 생각하는데 국내 최초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인도교로 만들어져서 한강 인도교라고도 했다. 노영심은 도대체 몇 살일까?

철조 아치는 6개다.

그리고 하늘의 달은 나도 모른다.)


한강대교 - 나무위키



우리 동네 목욕탕 정기휴일은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는지 아니면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속의 깊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 주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목욕탕 정기 휴일은 DJ DOC 머피의 법칙에도 나온다.

당시에는 목욕탕 정기 휴일이 상당히 중요했나 보다.

요즘에는 사우나 정기 휴일을 외우고 다닐까?

그냥 검색해서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내 새끼손가락엔 매니큐얼 칠했는지 봉숭아물을 들였는지 

커피는 설탕 2스푼에 프림 한갠지 설탕 한개에 프림 둘인지 


(여기는 너무 어렵지만 해석해 보자.

봉숭아물은 요즘도 들이는지 모르겠지만 매니큐어와는 차이가 난다.

요즘에는 네일숍이 많지만 당시에는 네일숍은 내일에도 안 생기고 개념도 없었다.

굳이 네일숍이라고 하면 친구 집에 가서 친구랑 서로 해주는 정도?

커피는 설탕과 프림 개수를 외워야 했다.

믹스 커피가 나온 것은 혁명적이지만 커피 입맛을 획일화하는데 기여했다.

어쩌면 아직도 설탕과 프림이 있다면 아메리카노 보다 많이 마셨을 것이다.

요즘에는 커피는 아아인지 라떼인지를 외워야 하겠다. 

커피 종류가 많아져서 외우기 힘드니깐 한 명만 만나라.)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하겠지만 

아주 가끔씩만 내게 일깨워준다면 

어때요 매력 있지 않아요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한다면 누가 피곤할까 생각해 보자.

그래서 아주 가끔씩만 내게 일깨워주라고 한다.

수시로 일깨워주면 피곤하겠다.)


어릴적 동화 보물섬 해적선장 애꾸 잭은 안대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만화 주인공 영심이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고깃집에서 내가 쌈을 먹을 때 쌈장을 바르고 고기를 얹는지 고기부터 얹고 쌈장을 바르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보물섬에 나오는 해적 선장이 안대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

원작에는 안 한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한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한데 정확하게 모르겠다.

당시 안대를 한 건 눈이 다쳐서 안대를 한 것이 아니라 어두운 갑판 밑으로 갈 때 어둠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보물섬 말고 피터팬에 나오는 선장은 안대를 했는데 이런 가사로 사람을 어렵게 하면 안대.

영심이를 아는 것도 힘든데 남학생까지 외워야 하다니.)


왕경태 - 나무위키


나도 모르는 나를 일깨워 주듯이 볼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능력보다 소중하지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지난겨울에 내가 즐겨 끼던 장갑이 분홍색인지 초록색인지 

그게 벙어리 장갑인지 손가락 장갑인지 기억할 수 있을까 


(장갑은 아마 분홍색일 것이다. 초록색 장갑은 있었을까?

그리고 요즘에는 벙어리장갑이라고 하지 말고 엄지 장갑이라 하라고 한다.)


나를 처음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던 날 

어느 정류장에서 들리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인지 빈대떡 신산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목포의 눈물이나 빈대떡 신사가 버스 정류장에서 들릴 때는 대략 70년대가 아닐까?

90년대에도 가요가 나왔다. 정류장 가게에서 특이하게 틀어놨을 수는 있겠다.)


나를 처음 만난 날 내가 구두를 신었는지 아니면 운동화를 신었는지 

그때 화장을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이럴 때는 찍어야 한다. 아마도 운동화를 신었고 화장을 했을 것이다.)


이런 노래다.

90년대 생활이 녹아있는 고전이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삐삐도 없을 때여서 공중전화에서 번호를 외워서 전화를 해야 했다.

이렇게 많은 것을 기억하고 다녀야 해서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을까?


요즘에는 전화번호를 못 외운다.

전화를 할 때 번호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찾는다.

가끔 이름이 생각 안 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번호보다는 짧아서 외우기 쉽다.


내비게이션을 일부러 안보는 것은 길을 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편해지는 생활만큼 편해지는 생각으로 된다.

굳이 외우거나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대신하려 한다.


그래도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하고 기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억에 매달리지 말고 기억할 것만 기억하고 잊어버릴 것은 빨리 잊어야 한다.

1주일에 한 번쯤은 기억을 청소해야 한다.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기억이 들어올 공간을 줄이는 것이다.

좋은 생각만 가지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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