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할 말이 있다며 진지한 몸짓으로 나를 앉혔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각을 잡나 싶은 마음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요즘 아파트 엄청 떨어진 거 알지. 엄마집도 많이 내렸더라고."
"아, 무슨 얘기하나 했네. 그래서."
"꼭 새 아파트 가야 되는 거 아니잖아. 주변에 적당한 연식으로 알아볼까? 고쳐서 살면 되지."
"엄마! 아파트 값이 왜 떨어졌는데. 이자가 얼만 줄 알고. 내가 대출 없이 어떻게 집을 사."
"그건 또 그렇제. 너희 돈 없제."
고쳐 않은 자세가 아깝다며 그 얘긴 그만하자는 내 태도에 엄마는 기어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래도 그때 너희 분양 포기한 거는 진짜 잘했다."
다시 시작된 엄마의 아파트무새. 이 굴레에서 나는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주택에 살겠다는 말을 얼마나 더 많이 해야 엄마가 믿을까. 아마도 아파트건 주택이건 내 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년 전. 나와 영빈이 청약을 고민하고 분양포기를 선택하던 때. 제로금리를 예단하며 앞으로 영원히 금리가 오를 일은 없을 거라던 세상이었다. 가진 돈에 비해 턱 없이 높은 집값에 새하얗게 질려 청약 당첨된 아파트를 포기하고 주택에 살겠다는 자기 위안을 담을 글을 썼다. 거기엔 그렇게 살다가 버락거지가 될 거라며 댓글이 달렸고 2023년 다행히 버락거지는 면했다.
여전히 매주 쪼개서 들어가는 적금을 맞추느라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돈을 옮기고, 사고 싶은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뒀다가 생필품 살 때 일부 결제하며 짜디짜게 산다. 그래도 하루하루 무섭게 지어지는 아파트와 상환기일이 없다. 그렇다 한들 우리에게도 이자가 무서운 대출이 있고 이자 때문에 고통받는 지인도 있다.
이 말은 세상이 밟았는데 꿈틀대지도 못하는 지렁이보다 못함이고
열쇠를 찾으려 가방 속은 헤집다가 뒤집어 쏟았는데 알고 보니 주머니에 있더라는 황당함이고
계란을 꺼내 놓고 국을 끓이다가 간이 심심해 된장을 풀어버리는 멍청함
그러니까 승자도 패자도 없는 아무 의미 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다.
정신 차리고 돌아오면
아파트 값이 떨어져도 이자가 높아 집을 살 수 없고
이자가 내린다 하더라도 그때면 집 값이 올라가 있을 테니
좋은 게 좋은 게 아닌 혹은 뭐가 좋은지 모르겠는
이번에 벼락거지가 되지 않았지만 언제든 될 수 있는
그래도 발뻗고 잘 집은 있어야 하니
영원히 고통받는 30대. 나와 내 지인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