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온전한 둘이어야 하는 이유
"엄마, 1 더하기 1은 뭐게요?"
요즘 난센스 퀴즈에 빠진 9살 아들이 쪼르르 달려와서 묻습니다.
분명 2나 창문 같은 식상한 대답은 아닐 테니, 저는 요즘 아이들이 빠져있는 11자 모양을 한 과자 이름을 자신감 있게 외쳐봤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씩 웃으며 “아니요. 1 더하기 1은 1이에요. 왜냐면 빗방울 한 방울과 한 방울을 더하면 큰 한 방울이 되니까요!”라고 합니다.
띵.
그렇습니다.
빗방울처럼 틀에 맞춰 형태를 바꾸는 액체는 얼마나 많은 양을 더해도 부피만 커질 뿐, 언제 어느 때건 완벽한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닙니다.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는 액체가 아닌 만큼 자신의 틀을 오롯이 유지할뿐더러, 그 속에는 그때까지 쌓아온 자신의 역사가, 이전 가정의 유산이 뒤엉킨 채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이 아무리 인륜지대사라 한들 완벽한 하나로 거듭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요?
결혼을 준비할 때 주변의 결혼 선배들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초장에 기선을 꽉 잡아야 해."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기에 다툼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처음부터 세게 나가서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도록 이른바 '선빵'을 때리라는 말입니다.
또 제가 평소 무척이나 존경하는, 그러나 가부장적인 세대를 살아온 만큼 어떤 부분에서는 저와 상당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우리(친정)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서방이 일 하느라 피곤할 텐데, 집에 오면 무조건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
당시 저도 분명 일을 하고 있었는데, 왜 부인만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할까요?
대체 왜??
결혼 후의 부부 관계에 대한 상반된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음속 의문만 커져갔습니다.
부부관계에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컨트롤하거나 컨트롤당하는 일이 필요한 것인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기준과 역사를 무시하고, 나머지 한 사람만의 것만을 절대적인 기준과 역사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결합이며 행복이 될 수 있는가?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 욕구가 인정받을 때야 말로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진정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온전한 '둘'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온전한 '둘'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호기심을 갖고 온전히 알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로써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결혼식 말미에 성혼선언문을 읊을 때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애매~합니다.
저는 이 말이 앞으로는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두 사람이 한 가족으로 거듭났음을 선포합니다.”라거나,
“이로써 두 사람이 하나의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