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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Sep 22. 2023

내리사랑

 밭일하려 오갈 때는 간선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가급적 해안 길로 다닌다. 남해안 바다는 유순하여 호반과 같지만 가는 길에 외가 동네가 있어서다.    

 

 잉어가 노니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이어라고 했다. 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잉어 등허리에 해당되는 곳이라 여엉등이라 부르는데, 언제 들어도 정감이 넘친다.

 위쪽 간선도로변이 마을 어귀이고 해안 도로 쪽은 마을 끝자락이다. 농어업을 주로 하는 곳이니 생업의 현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눈길 자주 머무는 곳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키 큰 소나무들이 해풍을 막고 서있는 감송포 언덕배기이다. 도로변에 차를 대고 내렸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예닐곱 살 까무잡잡한 꼬마와 이십 대 한 청년이 아까부터 한 방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송포와 해안 사이에 있는 들판을 감앞이라 하는데, 그곳의 벼 이삭들이 황금 군무로 일렁거리던 가을 녘이었다.

 좁다란 논두렁을 사뿐사뿐 헤쳐 나오던 삼십 초반 여자분. 치마저고리 옷자락이 나빌레라 나풀대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맡겨놓은 둘째 아이가 얼마나 컸을까? 살가운 친정 식구들 만날 생각에 또 얼마큼 가슴 두근거렸을까.

 그 속마음을 알 리 없던 꼬마는 막내 외삼촌만 남겨둔 채 외갓집으로 도망치다시피 했다. 주책없이 뛰는 가슴, 후끈 달아오른 얼굴을 투정하면서.    

 

 나는 할머니의 눈 밖을 좀처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여엉등 밭에서 고구마 캘 때도, 바닷가 바지락이나 쏙 잡을 때도 실과 바늘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어데 그뿐이던가. 한밤중 뒤가 마려워 할머니를 깨워도 마다한 적이 없었으니, 싸리문 옆 화장실 볼일 보노라면 담벼락에 기대 하품으로 기다리던 분이었다.    

 

 조손이 겸상하여 식사했다. 할아버지가 건네주거나 일부러 남겨둔 생선, 고기 등 귀한 반찬거리 덕에 밥투정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밥술 뜨는 외손자를 그저 빙긋이 내려다보던 할아버지의 깊은 속마음, 내 어찌 헤아리겠는가. 아직 외사촌이 없었던 시절이라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었다. 할아버지로부터 얼래!’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황소고집을 피운다던가, 칭얼대며 떼를 부릴 때면 혼쭐 아닌 저강도의 견책으로 그쳤다.

   

 우는 입에 등겨 집어넣기, 씹으면 껌이 된다며 입에 잉크 넣기, 빈 공기 소총을 종아리에 대고 쏘는 등 짓궂게 굴던 막내 외삼촌. 그런가 하면 멀찌감치 나를 바라보던 외숙모, 엄하게 대하는 큰 외삼촌이 식구 전체였다.     

 

 외갓집살이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와의 사무친 별리가 응어리로 맺혀있었다. 두 살 아래 동생을 업은 엄마가 선착장까지 같이 나왔기에, 당연히 탈 줄 알았다. 어른들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인데, 뒤늦게 떼를 부린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음을 어린 나이에 알아챘다. 일 년 가까이 떨어져 있어도 엄마 생각은커녕 얼굴마저 까맣게 잊고 지냈으니 이럴 반증함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친부모의 공백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외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살핌이 지대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 했던가. 어머니의 아낌 너머 더 근원적이고 농밀한 정을 온몸으로 받았으니 내게는 과분한 사랑이었다.  

 

 받았으면 베풀거나 아래로 흐르게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는가. 꿈쩍도 하지 않는 그 녀석 오늘만큼은 귀가 간지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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