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공사 중 짐과 거처를 옮겨야 하는데 비좁더라도 앞집을 이용하기로 했다. 한때 독거노인이 살았지만 세상을 뜬 후 우리가 매입하여 현재까지 단전호흡 수련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공사 첫날, 인부들이 들이닥쳐 1, 2층 오래된 가벽과 천장 내리는 작업을 했다. 그날은 분진과 위험한 낙하물로 인해 줄곧 집 바깥에서 지켜봤다. 철거 작업이 다 끝난 저녁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만감이 교차되면서 서글픔이 밀려왔다.
거푸집을 떼어낸 천장 슬래브, 가벽 지지대인 각재들(투바이), 걷어낸 창틀마다 촘촘히 쌓아 올린 시멘트 벽돌.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눈을 감았다. 망치, 톱 등 연장 다루는 소리, 누굴 찾는 소리, 분주히 움직이는 인부들의 공사 현장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현관 쪽에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년의 아버님 모습도. 모자이크처럼 모였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린다.
주인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화두로 떠올랐다. 현장에 자주 나타나면 작업자들이 싫어한다거나, 농작물도 주인 발자국 소릴 듣고 자라는데 뜸하면 난리 친다는 이들도 있었다.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현장을 오갔다.
4일 만에 창호 설치 작업,9일째는 방통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기와 목 작업은 특성상 거의 동시에 움직였고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보일러, 수도 설비 기사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중반을 넘어서자 공사 템포가 느려지면서 작업자들의 피로도 겹치는 듯했다.
목 작업에서 젊은 사람이 얼렁뚱땅 마무리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층 거실 벽면인데 수직으로 50cm가량 깨서 수도꼭지를 베란다 쪽으로 빼낸 곳이 있었다. 실내에서 몰탈(모르타르) 마감하지 않은 채 우레탄폼으로 대충 덮어놓고 있어서 예의주시하던 곳이다. 어느 날 작업자가 벽 전면(全面) 석고보드 작업을 그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아니, 그대로 덮으면 어떻게 해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수도관을 찾기 쉽잖아요.”
“단열 문제는 어떻게 하고요?”
며칠 후 미장 공정에서 빵 따내 몰탈 마감 처리하는 것을 보고서야 돌아섰다.
까다로운 작업은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습성도 눈에 거슬렸다. 요즘은 콘크리트 벽 절단할 때 무겁지만 컷팅 장비를 어깨에 메고 한다. 다용도실로 나가는 출입문과 계단 중간 다락문이 작아서 키워달라고 『설계 제안서』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특히 다용도실 출입문은 예전 치수로 발주한 창호를 달려고 하여, 곧바로 사장에게 전화하여 이의 제기했다. 다음 날 현장에 나타난 사장은 잘못을 시인했다. 컷팅 기사를 다시 부르고 창호 재발주로 일이 수습되었다.
설비 기사도 자주 애를 태웠다. 화장실 전면 보수하면서 기존 긴 다리에서 깔끔한 원형 세면대로 바꾸기로 했다. 작업 후 현장을 둘러보니 예전처럼 세면대 밑으로 수도, 배수배관이 노출되어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였다. 1, 2층 모두 그 부분을 재시공토록 했다.
앞 가게와의 수도 분리도 완벽하게 되지 않았다. 공정이 이미 끝난 방바닥을 함마 드릴로 깨서 배관 분리하는 등 하자 보수가 잦았다.
추가 작업들이 다 끝난 이후 잔금을 송금했다. 그런데 웬걸, 3일 후 또 문제가 터졌다. 첫 공사 구간이던 마당에서 수도관 누수가 발견돼 누수전문업체의 선조치 후 비용 정산을 받기도 했다. 설비 기사가 끝까지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소소한 것들을 다 나열할 수는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명구가 절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본가 리모델링 공사는 우리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자, 웰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모멘텀임에 분명하다. 작은 그늘에 가려져서 그분들의 땀과 열정까지 폄하하고 싶지 않다.
퇴근하여 밥상을 차리는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양손으로 내 뒷머리를 돌리더니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백 원 동전 두 개가 들어갈 정도의 원형탈모가 드러났다.
“허허. 그마저 없다면 내가 온전했겠어?”
“무슨 말이어요?”
“조물주는 누구에게나 감당해 낼 만큼 시련을 준다잖아.”
그곳으로 넘치는 시련을 덜어낸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뒷마무리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층 베란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LPG 사업소 직원이 방문했다. 입주 전후 베이크 아웃을 하면서 과다 사용하다 보니 점검 차 나온 모양이었다. 검침 후 내게 다가오는데 사십 대 중 후반쯤 돼 보였다. 리모델링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