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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Dec 14. 2021

라라랜드, 꿈 꾸는 삶에 바치는 헌사

우리는 꿈 꾸고 있는가?

* 언제나 그렇듯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주관적 의견으로 원작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삶에서 꿈과 열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전투를 이어가느라, 다음에 당장 어떤 직장에서 일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느라, 꿈이나 열정 같은 것은 잊고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해서 꿈이 꼭 나는 어린 시절의 것만을 상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주 어릴 적의 나는 나를 잘 알기보다는 어른들이 기대하는 것에 따라 내 꿈을 정했었고, 경험의 폭도 넓지 않아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무엇을 죽기 전에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상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장래희망 칸에 적는 '대통령'이라던가 '과학자'같은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이 우리가 꼭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영화 라라랜드는 명확하게 러브스토리라기보다는 꿈과 열정에 바치는 헌사이다. 사실 극 중의 미아와 세바스찬의 관계는 성적인 긴장감이 느껴지는 관계라기보다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이루도록 길잡이를 해주는 동료에 가깝다. 

세바스찬은 이상만 높은 골수 재즈팬이다. 정통성을 고집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과 이상만 있을 뿐 현실과는 타협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아는 꿈을 꾸지만, 자신이 꿈꾸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세상의 기대에 자신을 맞춰 연기자로서의 기회를 잡아보고자 한다. 이상만 가지고 있던 세바스찬과 현실에 치이던 미아는 몇 가지 우연과 서로에 대한 끌림을 거쳐 가까운 관계가 되고, 그 이후 서로의 꿈을 이뤄나가게 된다. 

세바스찬은 유서 깊은 반 비크가 삼바 타파스 가게가 되어버린 데에 큰 불만을 갖고, 반드시 그 가게를 정통 재즈를 하는 가게로 바꾸어 자신이 운영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재즈에 대한 열정만 있을 뿐, 그걸 실현시킬 힘은 커녕 하루동안 요구대로 연주해달라는 것조차 타협을 못해 일자리만 계속해서 잃는 상황이다. 미아는 어렸을 적부터 배우로서의 꿈을 꿔왔지만, 현실은 관심도 없는 배역에 아무도 신경조차 써주지 않는 오디션을 보러다니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미아를 만난 세바스찬은 미아의 가능성을 응원하고, 좀 더 자신감을 갖고 기존의 배역에 자신을 맞추고 타협하려고 하기보다는 내부에 있는 열정과 가능성을 자신의 시선으로 써내려가고 보여줄 것을 제안한다. 한 편, 어떤 구석에서도 타협을 못하는 세바스찬에게 미아는 조금 더 현실과의 소통의 길을 열어준다. (직접 권유는 아니었지만) 정통 재즈가 아니라며 거부하는 밴드 활동도 해보도록 하고, 상징적으로는 삼바 타파스 집을 바꾸기보다는 새로운 곳에, 치킨 꼬치라는 이름보단 SEB'(음표)s 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어보라고 한다. 결국 미아가 직접 극본을 쓴 <So Long Boulder City>는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들게 되고, 세바스찬 또한 (아마도)밴드 활동 등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자신이 꿈꾸던 재즈바를 (아마도 삼바 타파스 집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열게 된다. 


마지막 엔딩과 에필로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미아와 세바스찬이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보여줬는데, 사실 이는 자세히 보면 마지막에 들어간 가게가 세바스찬의 가게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아의 꿈은 이루어졌지만 함께하는 엔딩에서 세바스찬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결말로 보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둘은 서로를 사랑하긴 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애정관계는 여성과 남성 간의 애정보다는 각자의 꿈에 대한 열정이다. 중요한 시기에 서로의 꿈을 이상에 한 발짝 다가가도록, 현실에 한 발짝 다가가도록 하는 관계는 결말이 어떻든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나는 라라랜드에서 그 어떤 곡보다도 미아가 오디션에서 부른 곡을 좋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HPJZF3pBhk



"A bit of madness is key
약간의 광기가 핵심이야
To give us new colors to see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색깔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Who knows where it will lead us?
누가 알아,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
And that's why they need us"
그게 우리가 필요한 이유야.

(가사 의역)

우리는 꿈을 갖고 있는가. 미지근한 열정 말고, 현실적인 직업적 목표 말고도, 센 강에 몸을 던질만큼의 열정. 실패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그런 미친 짓을 할 용기를 갖고 있는가? 어릴 때의 우리들은 우리가 모두 특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살면서 시작 전에는 '혹시 내가 특출난 재능이 있진 않을까?' 싶었던 모든 분야에서 하나하나 좌절하게 되면서 우리가 평범하다는 것을 배워간다. 그리고는 하루하루 관성에 떠밀려 살아간다. 대학, 직장, 급여, 건강. 현실적인 문제들은 우리를 빈틈없이 채워서, 꿈이라던가 열정같이 연료가 많이 필요한 비효율적인 존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 내 생애를 통틀어 이루고 싶은 것. 이것을 할 때는 다른 더 큰 목적과 상관없이 그 순간이 행복한 일. 나는 지독하게 재능이 없는 분야에 작은 꿈을 갖고 있다. 심장이 싸우기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겨워 뛰게 하는 일. 하지만 항상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미루는 일. 


모두가 대단한 꿈을 갖고 살 필요는 없지만, 그 꿈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주변의 기대 때문에 혹은 사회에서 불어넣은 것인지 매 순간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만. audition 노래를 들을 때마다 조금은 무언가에 미치는 것, 기존에 보지 못한 색깔을 볼 수 있도록 뛰어드는 일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 대학로 연극을 봤던 경험 (그 분야 전문가 아님)
수능이 끝났을 시절(매우 예전..)에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다녔을 때 내가 느낀 점은, 굉장히 많은 연극들이 단순히 흥행을 위한, 자극적이고 스타성을 만들만한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겠지만서도 동시에 우리나라 연극 관객의 수준이 그 정도인가 좀 충격적). 이후에도 몇 번 연극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된 연극을 못 찾은 것이었겠지만 대부분이 가볍거나 자극적인 연애극, 혹은 어디서 본 듯한 클리셰를 범벅한 듯한 대중극이었다. 한 극은 조금 달랐는데, '우리는 왜 개고생을 하면서도 연극을 관두지 않나'에 대한 설명을 담은 극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라는 내용을 담은 그 극은 별 뚜렷한 스토리라인은 없었지만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유일하게 그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 라라랜드를 보면서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떠올랐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에이프릴도, 라라랜드의 미아도 꿈을 꾼다. 하지만 에이프릴의 꿈은 막연한 관성으로부터의 탈출이었고(구체적인 목표가 불분명했고), 가장 중요한 점은 꿈의 중심이 자신이 아닌 남편(프랭크)에게 있었다. 내 훌륭한 남편은 멋진 사람이니(하지만 사실 일상 속의 균열을 포착하는 사람은, 프랭크가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건 에이프릴이다) 그가 자신의 꿈을 펼치게 하고 자신은 이 삶에서 벗어나 그를 보필하는 것. 미아의 꿈은 세바스찬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바스찬과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동료였고 결국 그 둘이 가장 사랑하는 건 자신과 자신의 꿈이었다. 확실히 다른 결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라 단순한 비교는 어렵겠지만, 이 땅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의 꿈을 위해 살라는 것이다. 남편의 꿈, 남자친구의 꿈을 위해 사는 건 결국 당신을 공허하게 할 것이다. (실제로 '너는 뭘 하고 싶은데?'라는 질문에 '남자친구가/남편이/아들이 잘 되는 것'을 꿈으로 꼽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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