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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pr 23. 2022

영화 <비바리움> 후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콜라보

*스포일러 포함, 굉장히 주관적 후기


영화 <비바리움> 줄거리 :

학교 교사인 젬마는 둥지에서 떨어져서 죽은 아기새에 대해 물어보는 아이에게 이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설명해주고, 이후 애인인 정원사 '톰'과 함께 살 집을 알아보러 부동산을 방문한다. 그들은 조금 어딘가 이상해보이는 부동산 중개인 '마틴'을 따라서 '욘더'라는 마을에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똑같이 생긴 집들이 빼곡한 동네, 뭔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구름과 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마을에 갇혀버리게 된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말 그대로 택배 상자에 담겨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남자 아이까지 그들에게 주어진다. 아이는 젬마와 톰의 말을 흉내내며 자라나고(애기가 흉내내는 소리가 아니라 녹음한 것처럼..), 톰은 탈출할 방법을 찾겠다며 마당에서 땅을 끝없이 파는 데 골몰한다. 이에 따라 젬마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톰은 어느날 깊은 땅굴 속에서 시신이 든 가방(으로 추정)을 발견하고, 그 충격의 여파 속에서 죽게 된다. (집이 잠겨 못 들어가게 됨) 


어느새 다 자라버린 남자아이. 젬마는 곡괭이로 그를 위협하던 중 집 아래의 이상한 공간으로 빠져들어간다. 그곳에서는 아마도 이전에 같은 삶을 반복했던 이들의 삶이 재생되고 있고, 배경은 똑같은 '욘더'의 집이다. 젬마 또한 죽게 되고, 남자아이는 그녀를 시신 가방에 넣어 다시 마당에 묻고, '욘더'를 벗어나 동네로 나간다. 그리고 다 죽어가는 중개인 마틴을 처리하고, 그의 이름표를 이어 달고('마틴'이 된다) 새로운 부부를 맞이한다. 

근데 소름돋는 건 우리나라에 진짜 저거랑 똑같이 생긴 단지가 있다. 좁은 땅에 최대한 이윤을 내려고 짓다보니 저렇게 소름돋게 생겼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비바리움 중에서)

한 때 이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결혼한 부부는 자신의 삶을 갈아넣어,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하여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을 키워낸다. 그리고 그 자식을 다 키우고나서도, 자신들의 삶이 다할 때쯤에 수중에 돈이 남는다는 건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병원비든, 집 값이든, 우리는 우리의 노동력을 팔아 얻어낸 돈을 우리의 생존에 소진하고, 빈 손으로 태어나 사회에 한평생 노동력을 제공할 자식을 세상에 남긴다. 그럼 가정이란 것은 끝없이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없는 공동체가 아닌가? 


톰의 인생

영화 <비바리움>은 이러한 '일반적인' 삶을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보여준다. 마치 둥지를 구하기 위해 온 평생을 다 하는 새에 비유되지만, 사실 그 내부는 너무나 인간의 삶이다. 톰은 끝없이 '더 나은 삶/집' 혹은 '이 곳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소위 말하는 바깥 일에 골몰한다. 하루 종일 땅을 파기 위해 젬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도 못한 채 죽게 된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그토록 찾던 '집'은 젬마였음을 깨닫게 되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다. 사실 톰의 행동은 좌절스러운 상황에서 파트너와 함께 논의하고 이를 온전히 마주하기보다는 그 결과가 분명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일('하층토가 나오지 않아!'하며 땅 파기)로 회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화의 상황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다른 무슨 방법이 있었겠냐만. 젬마와 춤을 추거나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젬마의 인생

젬마는 두 남자의 수발을 든다. (아들 아닌) 남자 아이의 수발을 들고, 톰이 나가서 종일 일할 수 있게 식사를 준비해주고 그를 돕는다. 이는 <그림자 노동> 같은 책에서 말한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잘 보여준다(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공조라고 불리는 여성의 역할 : 남성 노동력이 바깥에서 일을할 수 있도록 무료로 노동력을 제공 -돌봄 노동, 가사 노동, 감정 노동 등; 이는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며, 사회가 노동자들을 싸게 -생산성 회복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 없이- 부릴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톱니바퀴이다). 어쨌든 젬마는 '남성들이 밖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집 안에서 수발드는 여성'의 역할에 갇히게 된다. 톰의 죽음 후, 욘더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과정에서 이전에 그 집에서 같은 삶을 산 커플이 나타난 것(그들의 삶과 죽음은 그 집 밑에 파묻혀 있는듯하다), 그리고 그 배경 또한 욘더인 것은 아무래도 그런 삶이 이번 뿐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반복되어왔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남자 아이의 인생

나는 한 편으로 남자 아이와의 관계도 다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머니는 자식을 무제한 사랑하고.. 같은 모성애 신화에서는 인정되지 않겠지만, 영화 속 커플은 '이런 데에 갇혀 살게 된' 상황에 대해 남자 아이를 원망하기도 한다. 자기가 원치 않는 상황에 갇혀 아이를 키우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원망을 아이에게 담을 수도 있으니까(그래야 된다거나 아이를 학대하는 이유로서 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는 뭔가.. 반인반조(새)같기도 하고.. 하여간 보면서 정이 가진 않는다.. 다만 그들이 키워내도록 지워진 미션일뿐.)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던지는 메시지 또한 어느정도 명확하다. 그렇게 '집'에서 그들을 자양분으로 자란 노동력은 다시 톱니바퀴와 같이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인력이 된다. 


*

사실 비바리움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다소 극단적이긴 하다. 우리가 이웃과 친구도 없이 갇혀서 살아가진 않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고 있는 사회 구조를,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낯설게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한 번쯤 보는 것도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살려고 애쓰지 않으면 관성대로(영화에서 말 하는 '자연 법칙'대로) 살게된다. 



+ 영화가 성 고정관념에 갇혀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당연히 그런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반갑게 생각하며, 다만 나는 영화가 그러한 성 고정관념을 오히려 눈에 띄게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특히 2019년,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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