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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pr 28. 2022

나의 돌발성 난청 기록

잃기 전에 아껴야 할 것들

이전에 한 번 몸에 문제가 생겨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낀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처음 청력에 문제가 생긴 때로부터 얃 두 달 반의 시간이 지났고, 아직 진행 중이며, 지금까지의 일을 기록하려고 한다. 내가 병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때로는 힘을 얻기도 했기에 내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남긴다. 


1. 증상과 진행
처음에 귀가 조금씩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먹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먹먹할 때에는 잘 안 들렸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는 (먹먹할 때를 제외하고는 잘 들리므로) 비염 때문인 것 같다며 비염약을 주었으나, 조금 큰 2차 병원에서는 청력이 낮은 음역대에서 조금 저하되어 있으니 비염약과 스테로이드를 조금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스테로이드와 비염약을 먹고 증상이 점차 나아졌고, 일주일 뒤부터 박동성 이명(귀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림)이 들리기 시작했으나 청력은 정상이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는 청력이 정상이고 고막에도 별 이상 없으니 별다른 검사 없이 비염약만을 계속해서 처방해줬고, 한 달 반이 넘게 증상이 지속되자(심지어 이비인후과에서 코로나를 옮았는지 중간에 코로나로 앓기도 했다) 다른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신경과를 가서 약도 처방받아보고, 다른 이비인후과를 방문해서 또 다른 진단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귀가 먹먹하고 안 들리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시끄러운 이명과 함께였다. 귀가 먹먹하고 외부 모든 소리가 찢어질듯하게 들리고(대화나 소음이 괴로움), 시끄러운 이명이 계속됐다. 한 병원에서는 검사 후 (검사 결과의 패턴 상) 이소골 이상이 의심된다며 대학병원 진단서를 써주었고, 대학병원에서는 검사 결과 상 청력이 저하되었으므로 (대학병원에선 개인 병원에서 써준 진단서 내용은 잘 고려하지 않는듯하다) 돌발성 난청인 것으로 진단 받았다. 난청에는 소음성 난청, 돌발성 난청 등이 있고 내가 진단 받은 것은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돌발성 난청이다. 여성에게서 발병이 많고, 30대의 젊은 환자 뿐 아니라 찾아보니 아주 어린 아이들도 겪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이비인후과에서는 단지 청력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고 청력이 저하되었는데 원인이 따로 보이지 않으면 돌발성 난청으로 보고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치료를 하는 것 같다. 돌발성 난청의 예후는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귀에 문제가 있으면 병원을 최대한 빨리 가보길 바란다. 늦었다고 생각해도 가보는 것이 낫다.



2. 병원의 진단

대학병원에서는 청력검사(다양한 음역대, 다양한 음향 크기에서 어디까지 들리는지를 체크)를 진행하고, 고막이 정상인지 확인하는 고막 압 검사(?), 골전도 검사, 단어 등을 알아듣는지 확인하는 언어 검사 등을 진행했다. 개인 병원에서는 청력 검사와 골전도 검사(한 병원에서만) 고막 검사 정도를 진행했다. 원인에 대한 진단이 굉장히 여러가지였다. 

(1) 비염 : 청력이 정상일 때에는 비염으로 인한 귀 먹먹함이라고 주로 진단했다. 

(2) 이관개방증 : 청력 문제 이전에 급속하게 살이 5kg정도 빠졌으므로 그로 인한 이관개방증을 진단한 의사도 있었다. 
(3) 신경성 : 신경과에서는 따로 귀 검사를 하지는 않으므로 박동성 이명에 대해 신경성 관련 약물을 처방했다.

(4) 이경화증 : 고막과 달팽이관을 연결하는 이소골(작은 뼈들)에 문제가 생겨 굳어지는 병. 개인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한 뒤 의심된다며 대학병원으로 보낸 병명이다. 보통 수술을 해야한다. 
(5) 돌발성 난청 (원인 모름) : 대학병원에서 현재 진단받은 병명이다. 청력에 명백한 저하가 있기 때문에 진단받았다. 


3. 병의 원인

사실 저 위의 내용 중 무엇이 진짜 병명인지 알 수없다. 다만 원인 중 한 가지에 대해서 정말 강조하고 싶다. 보통 돌발성 난청의 원인으로 스트레스와 과로, 수면 부족 등을 많이 언급한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다. 병이 발발하기 전, 나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비교적 장기간 복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몸무게가 빠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스트레스를 이기는데 약물이 조금은 도움되었지만 발발 직전에는 해당 약조차 챙겨먹지 않을 정도로 자기 돌봄이 무너진 상태였다.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주변에는 화를 내고 스스로는 학대했다. 항상 각성 상태여서 잠은 줄어갔고 그런 와중에도 꾸역꾸역 무리한 스케줄을 세우고 대강 해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유능도 책임감도 아닌 그저 자기 학대이다. 내가 잘 나가는 사업가여서 돈을 벌어들인 것도 아니고,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어느정도 적당히 해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미세한 일들을 하면서 과도한 습관적 압박감만을 겪었던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도 못하고(신청했다가 취소하고), 운동을 못하니 체중도 줄어갔다(근육이 더 빠져서). 원래도 자세가 안 좋고 몸이 약한 편인데 다리를 꼰 구부정한 자세로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거나 누워서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해결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후회뿐인데, 누군가는 간접 경험만으로라도 그러한 자기 학대를 멈췄으면 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다이어트약 등을 먹거나 급속한 체중 감소로 이관개방증을 겪게 된 경우가 많으니 절대 체중이 빠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길 바란다-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지만-.)


4. 현재 경과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 돌발성 난청의 경우 1/3은 정상 청력으로 돌아오고, 1/3은 정상보단 낮지만 현 상태보다는 나아지며 1/3은 돌아오지 않거나 악화된다고 한다. 초반에 스테로이드를 고용량으로 투여한다는데 사실 병원에서 격일로 약을 주어서 처음에 많은 걱정을 또 했다. 그리고 또 귀 문제를 겪는 사람들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정보도 얻었지만 우울감이 심해지기도 했다.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는데 이대로라면 어려워져, 내 인생이 위태로운 기분이다. 일단 2주 간 약을 먹으며 지켜봐야 한다. 오늘 아침도 일어나며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절망감이 컸다. 다만 그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는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고 꼬이는 일도 많을 것이고 몸에 영구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이런 식의 태도는 병을 부추기거나 더 낫게 하지 않는다. 하루종일 집에 앉아서 멀어버린 귀 생각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음이 괴롭긴하지만, 수술할 지도 몰라서 미뤄뒀던 발레 수업을 다시 나가기로 했다. 음악 소리가 귀에 안 좋을 수는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귀 건강만이 아니라 모든 건강을 잃을 것만 같다. 무엇을 하던간에 어떤 상태에 있던 간에 스트레스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난청을 겪으며 실제로 이를 겪었거나 회복되지 못한 사람들을 여러 사례를 찾아봤다. 사실 사람마다 톤이 달랐는데(매일매일 죽는 게 낫다 부터 그냥 안 들리는대로 살지 뭐 까지..), 나는 이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 견뎌내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명이나 난청, 시각 문제 등을 티 내지 않고 일상적으로 겪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도..) 청력의 소중함에 대해 하루하루 느끼고 있고, 그러한 어려움을 견디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또한 키우고 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이겨내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난청을 겪은 베토벤도 그런 훌륭한 곡들을 써냈어,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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