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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아저씨 May 03. 2021

한 남자의 이야기

아버지 전상서

경남 합천의 시골마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못 가게 한 아버지 몰래 시험을 보았고 읍내에서 1등을 한 덕분에 장학금으로 겨우 중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허나 밑에 동생들을 위해서 중학교 졸업 후 부산으로 일을 하러 갔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배움의 갈증이 크던 그는 낮에는 중국집에서,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녀 졸업했고 일을 하면서도 계속 공부를 이어가 부산의 해양대학교까지 마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배를 타기 시작했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집안을 책임지었다. 위로 형님 두 분 밑에 동생 둘을 시집 장가보낸 후에야 32살 당시로는 노총각 나이로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친구와 같이 시작한 사업에서 사기를 당하게 되고 처자식을 두고 생계를 위해 다시 배를 타게 되었다. 10년간 배를 타면서 두 아들의 탄생의 순간에는 같이 있지도 못했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편지로 부인과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살았다.


배에서 완전히 내린 후, 자신을 아버지로 못 알아보는 아들을 보며 그는 자신의 삶에 처음으로 후회를 했었다고 한다.


배를 타서 모은 돈으로 기계 하나로 공장을 시작했고 직원 20명의 작은 중소기업을 이루게 된다.


늘 바쁜 그는 자식들의 자는 뒷모습만 보았지만 같이 있는 순간만큼은 두 아들에게 사랑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는 고향을 사랑했고 공장도 집도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주말에는 두 아들을 데리고 늘 고향집을 향했고, 돌아오는 길에 있는 처갓집도 자주 들르는 효자였고 좋은 사위였다.


신혼 시절, 홀로 시댁 살이를 하며 두 아들을 키운 부인을 많이 아꼈고 늘 다시 태어나도 난 당신과 다시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를 달고 살았다.


그는 고향집을 새로 짓고 싶었다. 그날도 새로 지을 고향집 공사를 위해 시골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교통사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굴곡진 한 남자의 삶을 겨울의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마감했다.


그의 나이 48.


몇 글자로 적은 한 남자의 인생. 그 남자는 바로 나의 아버지이다.


                              <나의 아버지>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사업하던 아버지가 남긴 빚은 상상을 초월했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그로 인해 많은 일을 겪으면서 살았다.

나를 아는 이들은 가끔 묻는다. 아버지를 원망한 적 있는지..


단언컨대, 절망적인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이 생에서 많은 것을 겪고 느끼고 부딪히면서도 한번 살아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은 결국 나의 아버지 덕분이기 때문이다.


이후로 가끔 타인의 가족사를 듣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 사연 없는 가족은 없었다.

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필연적인 삶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따금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가족의 무게가 오더라도 우리 서로를 원망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도 그녀도 나를 만나기 전, 내가 알 수 없는 더 큰 무게를 감당하고 온 사람들이다.


나를 위해 살아온 그들의 무게를 존중하게 될 때 내 삶 역시 존중되어질 꺼라 생각한다.


이따금씩 꺼내 보는 그 남자의 사진과 그의 삶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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