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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에이미 May 01. 2020

서울대에서 발원한 스무 살의 인생 고찰

가을에 작성한 스무 살 때의 일기 중 발췌

서울대학교 근처에 산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연초 밤에 운동 삼아 한 번 기웃거리고, 관악산 가는 길에 '샤' 정문을 지나친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가 본 적이 없어서 드디어 오늘! 마음먹고 서울대학교 탐방을 갔다. 학식까지 먹을 거라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말이다.

한국 대학 서열 1위 서울대학교는 광막하다. 교내에 시내버스가 다니는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여실히 존재하는 법이다.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기분이 든다. 서울대학교 교내를 걸어 다니겠다는 당찬 패기는 10분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학생회관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대학교 구경하실 거면 괜한 헛걸음하지 마시고 바로 학생회관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서울대학교에 찾아온 가을
2번 지나쳤다고 그새 익숙해진 '샤' 정문은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사진첩에 없다.

단풍과 은행으로 물든 캠퍼스는 가을이 왔음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오전에 아르바이트하면서 단풍 구경으로 인해 차가 많이 막힌다는 소식을 라디오 뉴스를 통해 들었는데 나름 단풍 구경한 셈이다.

청아한 가을밤이 고요하게 깊어간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Birdy의 음악과 함께 세상 누구보다도 센티해졌던 순간을 기록하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젊음과 패기가 가득한 곳

필자는 대학교 캠퍼스를 젊음과 패기가 가득한 곳이라고 정의 내리곤 한다. 건물 곳곳에 붙여진 대자보는 감히 내린 정의를 완벽하게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는 듯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요 근래 시흥 캠퍼스 문제로 한창 떠들썩한 서울대학교의 대자보는 필자의 시선을 흥미롭게 이끌었다.

곳곳마다 설치되어 있었던 ‘노답’ 현수막. 귀여운 이모티콘을 동반하였지만 화를 얼마나 꾹꾹 눌러 담아 제작했는지 짐작이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자보에 이끌려 가다 보니 돗자리를 펴놓고 건물을 지키고 있는 총학생회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학생들의 시위 장면들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과연 이곳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지금이 과연 2016년인가 등의 의문이 들었다.

시흥 캠퍼스 관련 대자보를 제외하고도 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자보가 상당했는데 그중에서도 위 사진 속의 대자보가 발길을 가장 오랫동안 멈추게 했다. 서울대 성 소수자 동아리에서 작성한 대자보였는데 학과, 학번, 이름 등의 개인 신상정보를 당당히 밝히며 커밍아웃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레즈비언 만세” 호모포비아들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그녀의 기막힌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사랑 앞에서 성별은 의미 없어. 어떠한 조건에서도 동등해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거야.
(먹보 기준) 캠퍼스의 낭만 : 학식

캠퍼스의 낭만 중 하나인 학식은 무조건 싸고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대 학식은 필자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엎친데 덮친 격 본래 메뉴였던 깐풍기가 소진돼서 치킨 텐더로 대처됐다. 이게 4000원짜리 학식이라니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는 서울대 학식이라고 생각하고 꾸역꾸역 먹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을이 찾아온 서울대를 거닐고, 학식도 먹으며 캠퍼스 생활을 간접 체험했다. 역시나 마음속은 '부러움'이라는 감정으로 물들었다. 북적북적한 분위기 속에서 학식을 먹고, 학생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동기들과 함께 캠퍼스를 걷는 등의 일상은 확실히 필자의 삶에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다.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할지, 나만의 삶을 개척해야 할지 끝없는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 2016년 10월 22일에 작성한 일기입니다. *




글, 사진 : 방랑자 에이미

Blog :  blog.naver.com/trvr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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