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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Sep 03. 2018

38. 플라톤 가라사대

어떤 사람과 일년간 대화해도 모를 것을 한 시간만 같이 놀아도 알 수 있다.  You can discover more about a person in an hour of play than in a year of conversation. 

–– Plato Greek philosopher 427-347 BCE 


놀이를 하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매우 잘 이해하게 된다. 더불어 자기 자신의 새삼스러운 면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같은 아이들과 몇 년째 골목에서 놀다보니 각각의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 저절로 알게 된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를 법한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부모 앞에서는 늘 철부지 같은 어떤 아이가 또래 사이에서는 얼마나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는가를 보게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보게 된다. 집에서는 항상 덤벙댄다는 아이가 또래집단 안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워지는 모습도 보게 된다. 놀이를 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또는 얌체같은 행동을 일삼는지 숨길 틈도 새도 없이 다 드러나게 된다. 

우리 집 아이들을 예로 들자면 작은 아이와 고누라는 고전 보드게임을 하면서 몇 달 사이에 얼마나 신중한 면모를 갖게 되었는지도 발견한다. 그 놀이 덕분인지 아이의 원래 성격이 이제야 드러나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항상 막내같이 어리광만 부리던 작은 아이의 면모에 점점 신중함이 커져가는 걸 알게 된다. 또한 골목에서 놀면 아이들의 공격적인 성향도 세세하게 지켜보게 되는데, 더불어 큰 딸과 작은 딸이 공격적인 또래친구의 언행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의 전략을 하나씩 하나씩 시행착오를 통해 익혀가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부모로써 꼭 알 필요까지는 없는 것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취학전 아동들을 ‘전조작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아동들은 승부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데다가 상대방과 자신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한 번씩 놀이에 참여한다는 기본적인 놀이의 룰, 즉 놀이의 신성한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취학기가 되면 아동들은 자신이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상대방과 자신이 모두 놀이의 신성한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발달에 있어서 매우 큰 전환이 이루어진다. 시기상의 차이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언젠가는 아이들은 이런 것을 모두 알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또래에 비해서 늦된다고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함께 놀이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엔가 아이가 승패를 모두 인정하고 승리의 기회가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하는 순간에 함께 있게 되었다. 이런 순간에 아이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삶의 공식적인 흐름과 행사에 함께 하지 못했어도 자녀의 정신이 아차하는 순간에 비약하며 솟아오를 때 애비로써 함께 있을 수 있어 기뻤다.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놀이를 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스스로도 확연히 알지 못하던 자신의 문제점이나 장점을 알게 된다. 어른들이 어린이와 함께 놀기 힘들게 된이유도 어쩌면 이와 관련이 있을 듯하다. 큰 딸이 깍두기 연령대의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는가 혹은 어떤 경우에 공격적으로 행동하는가를 살피면 스스로가 가족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성찰하게 된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다’라는 말은 정녕 옳은 말이다. 자신이 모르던 자신의 모습을 이 선연한 거울 속에서 마주 대할 때 마음이 불편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중세만 해도 성인들과 아동들의 놀이생태계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중세인들은 우리만큼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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