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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Sep 03. 2018

40. 놀이와 인간의 상호 맥락

놀이는 문화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며 특정 문화의 한 표현이다. 놀이는 유아발달의 지표와 반영일뿐더러 문화의 학습과 전파에서 중요한 맥락이거나 매개물이다. 

–– Schwartzman, H. 


문명화된 종족은 일을 잘 하는 기술에 놀이를 잘 하는 기술을 더할 터이다.  To the art of working well a civilized race would add the art of playing well. 

–– George Santayana American philosopher 1863-1952 


출생시 부여받는 신분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되는 전근대 사회에서는 우연성이 두드러지는 놀이가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보다 우세한 경향이 있다. 우연성이 강한 놀이는 놀이자가 운명에 승복하는 법을 내면화하게 한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서 거친 놀이를 적게 한다. 그러나 거친 놀이를 할 때는 평소에 아주 조용하던 여자아이도 남자아이 못지않게 거칠어지며, 혼성으로 있을 때는 잘 안 하는 거친 놀이를 여자아이들끼리 있을 때 좀 더 하게 된다. 또한 아동이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자아상이나 유능감 같은 중요한 정신적 자원은 몸과 인지 능력과 사회적 기술이 놀이를 통해 발달하면서 더욱 풍성하고 확고하게 된다. 거시적 차원에서 보건 미시적 차원에서 보건 분명 놀이는 인간(사회·문명)에 영향을 주고 인간·사회·문명은 다시 놀이에 영향을 준다. 이와 같이 인간과 놀이는 상호맥락의 관계를 가진다. 간단히 말하자면 놀이와 인간은 역동적이고 순환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간과 놀이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때 사회·문화는 그 매개이자 축이 된다. 어떤 사회의 문화적 구조와 맥락은 일정한 조건으로 특정한 부류의 놀이를 촉발하거나 억제한다. 놀이는 피드백을 통해 사회문화적 조건을 강화한다. 

놀이와 인간은 상호맥락이 된다. 놀이는 인간·사회·문명에 영향을 끼치며 인간·사회·문명에 따라 놀이 형태의 차이가 확연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은 같은 종끼리 비슷한 놀이를 한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놀이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사회나 문명에 따라 차이가 있다. 놀이생태계는 아동이 사회화되는 과정중의 중요한 문화적 환경으로써 문화적인 자아정체성을 형성한다. 동시에 아동의 자아정체성은 자신의 몸에 새겨지는 놀이생태계 경험을 일부만 포함시키고 일부는 배제한다. 이 점에서 놀이생태계는 학교나 가정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각각의 인간은 자신에 맞는 놀이생태계를 구성하거나 선택하며 대부분의 아동들은 자신에게 맞는 또래집단을 선택한다. 

농산어촌 같이 넓은 지역에 또래 집단 성원이 희소한 경우에는 놀이에서 극심한 경쟁이나 겨루기의 양상이 도시환경에 비해 매우 적게 나타난다. 그와 반대로 도시와 같이 좁은 지역에 또래 집단의 구성원이 많은 경우 놀이는 경쟁과 겨루기를 위주로 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는 서울생으로 오징어놀이 같이 몸싸움이 격한 놀이를 즐긴 기억이 많지만, 시골 출신의 동갑내기들은 그렇게 격한 놀이를 많이 하지 않았다. 놀이는 인간 사회를 반영한다. 어린이의 성장과정과 성장 후에 극심한 경쟁이 예상되는 환경에서는 악을 써가면서 놀게 되는 겨루기 위주의 놀이를 통해서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반대로 농어산촌 같은 촌락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이 장성한 어른들에게 중요한 삶의 지향이 되는 곳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아지트를 만든다거나 술래잡기 등등 경쟁의 정도가 미약한 놀이를 통해 적응훈련을 하게 된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사람이 의사소통할 때 말을 액면 그대로 사용하는 저맥락사회와 그 말이 오가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많이 달라지는 고맥락사회로 구분하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양권은 고맥락사회에 속하며 도시보다는 농산어촌으로 갈수록 고맥락사회에 가까워진다. 흥미롭게도 저맥락사회일수록 성문화된 규칙을 가진 스포츠를 즐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 반대로 고맥락사회에서는 엄격한 규칙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놀이보다는 참여자들의 합의에 의해 놀이 규칙을 변형시킬 수 있는 놀이들이 많이 살아 남는다. 

농경사회와 수렵사회를 놀이의 인류학적 관점으로 보아도 뚜렷한 구분이 된다. 농경사회의 놀이는 모둠이 협동하는 정도에 따라서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줄다리기를 보아도 상대방끼리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지 않다면 줄을 당길 때 서로 동일한 리듬에 맞추어 몸에서 힘을 끌어내는 쪽이 우세하다. 농경사회와 대비되는 수렵사회는 참여자의 힘과 재치 그리고 고통을 견디는 인내를 시험하는 놀이들을 전승시킨다. 사냥꾼이 집을 떠나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며칠 또는 몇달 동안 사냥감을 찾거나 기다리는 동안 일어날 일을 상상해 보자. 사회의 성격과 그 사회 안에서 발달하는 놀이의 성격이 서로 깊은 관련을 맺는 것은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당연한 일이다. 놀이는 그저 재미있다고 해서 가까운 문화권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가까이 살아가며 연중 여러 차례 교류하는 농경부족과 수렵부족의 놀이문화는 상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놀이와 사회의 관계가 단선화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놀이가 특정한 인간형을 만들어 낸다는 결정론은 옳지 않다. 반대로 어떤 놀이에 그 놀이를 향유하는 인간 사회의 발전 수준이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로제 카이와가 <놀이와 인간>에서 밝혔듯, 철기문명 이전의 원시사회 구성원들이 즐겨하는 놀이가 따로 있고, 신분이 중요한 사회에서 즐겨하는 놀이와 경쟁원리와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에서 즐겨하는 놀이가 다 다르다. 그러나 인간·사회가 놀이에 영향을 준다는 명제 역시 쉽게 단선화할 수 없다. 전쟁 중이거나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된 지역의 아동들은 분명 전쟁놀이를 하는 빈도가 높다. 이러한 사례는 분명 놀이가 사회의 영향을 받게된다는 예가 되기도 하지만, 이 아동들은 죽음과 파괴에 직면하여 상처받은 자아를 전쟁놀이를 통해 치유하고 정화하며 자신의 환상적인 힘과 통제력을 통해 불안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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