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놀이는 아이의 내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샘과 같다. Creative play is like a spring that bubbles up from deep within a child.
현재 한국의 놀이터는 관련법안이나 관리주체가 워낙 다양해서 일관된 정의가 없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는 주택건설촉진법에 거주자의 생활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공동시설로서 복리시설에 해당한다. (3조 7항. “복리시설” 이라 함은 어린이놀이터, 구매시설, 의료시설, 주민공동시설, 일반목욕장, 입주자집회소 기타 거주자의 생활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공동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을 말한다. ) 또한 주택지역의 놀이터는 체육시설이나 운동시설로 간주된다. 어린이놀이터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고 있거나 개념이 나와 있는 법은 <아동복지법>과 현재는 <주택법>으로 바뀐 <주택건설촉진법>의 시행규칙(1973년 제정)이다. 우선 아동복지법은 어린이놀이터를 “아동에게 건전한 놀이·오락 기타 편의를 제공하여 심신의 건강 유지와 복지 증진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린이 전용시설”(법 제16조)로 규정한다. 놀이터는 관련법상 체육시설이 반드시 많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놀이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오히려 제한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획일적인 디자인과 이용하는 아동들의 연령대는 비슷하다. 시설을 이용할 어린이들이 다른 일들로 바쁜 이유도 있겠지만 놀이터 시설물의 획일성과 이용하는 어린이들이 매우 연소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이런 놀이터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놀이터요? 애기들이나 노는 데죠.” 필자가 사는 동네의 한 저학년은 엄마가 놀이터에 가자고 하자 매우 의젓한 말투로 대꾸한다. 과거에 비해 디자인이나 안전성이 개선되었지만, 상당수의 저학년들은 이런 놀이터에서 노는 일을 매우 유치한 것으로 여긴다.
기존에 있던 전통 놀이터와 우리의 일상공간 언저리에 있는 여러 시설과 장소들을 개조해서 활용한다면 그렇게 큰 예산을 마련할 필요도 없다. 어린이들이 사용하면서 마음껏 여러 놀이를 할수 있는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디자인과 정책적 고려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놀이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껏 뛸 수 있는 널찍하고 평평한 마당이다. 학교 운동장만큼 클 필요도 없다.
런던의 하이드파크나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경우도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여가활용 공간이다. 이만큼 넓은 곳을 우리 대도시에 새로이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현재 우리의 생활환경 가까이에 있는 공원을 어린이들이 원초적으로 뛰고 구르고 뒹굴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공연이 가능한 시설을 보태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요즘 회자하는 표현 중 ‘88만원세대’라는 말이 있는데, 이들 중에서 배가 고파도 인형극이나 어린이 뮤지컬을 하면서 불투명한 미래를 견디는 이들이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내버려 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대도시의 경우는 ‘구립’ 어린이극단을 만들고, 소도시의 경우는 ‘군립’이나 ‘시립’ 어린이극단을 만들어 ‘고용 창출’도 하고 지역 어린이들의 문화적 욕구도 채울 수 있다. 이런 공연을 할 수 있는 시설물들이 구민회관 등의 이름으로 분명 존재하고 있으니 이런 곳에 강사가 투입되는 정규적인 프로그램 이외에도 ‘놀이’ 개념을 도입한 상설적이고 상시적인 공간이 있다면 이용자들은 구태여 시간을 확인하여 부산하게 오갈 필요가 없게 된다. 문화시설에는 놀이마당과 도서관이 기본으로 있어야 한다. 실컷 뛰어놀다 지친 아이들이 책도 보고 공연도 보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앞서 강조하였듯 놀이생태계는 분명 문화적 환경이고 문화자본이다. 문화는 스케줄을 확인하고 따로 시간을 내어 즐기는 것만이 아니다. 일상의 생활 환경 자체가 모두 문화이다. 지역 내에서 지역의 어린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자그마한 시설이나 장소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언제든 놀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의 중심점을 이동해야 한다. 특별히 고려할 점은 장애아나 특수아나 일반아동이나 모두 안전한 장소에서 마음껏 놀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후의 ‘모든 어린이들’이라는 표현으로 장애·특수·일반 아동을 총칭하고자 한다.)
모든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는 모든 아이들의 놀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편이다. 비장애 어린이나 장애 어린이, 특수 아동 모두는 각각의 사연과 이유가 있어서 집 밖에서 맘편히 놀 수가 없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다를 수도 있지만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집 밖의 공간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골목에는 차들이 많고 가까운 곳에 놀이터가 있는 경우도 그리 흔하지는 않다. 게다가 놀이터란 곳은 일반 아동들이 3~4학년만 되어도 유치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런 놀이터에는 특수 아동이나 장애 아동들에게는 위험하거나 이용이 불가능한 시설이나 장치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과 비슷하게 특수아나 장애아들 만을 위한 특수한 시설과 장비를 갖춘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놀이터를 ‘전통 놀이터’라고 한다. 전통 놀이터는 대개 비장애 일반 아동을 기준으로 만든다. 비용면에서 전통 놀이터는 대량생산 시설이지만 저렴하지 않으면서 아동들의 선호도가 떨어진다.
미국의 경우에는 “경계없는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민간에서 시작한 놀이터 운동이 국가기관으로 편입되었고 유럽의 경우 “통합놀이inclusive play”라는 개념으로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 놀이터를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플레이리더를 훈련한다. 모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저비용으로 만드는 데 이런 사례를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무장애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시도를 하긴 했는데 그 이름에 걸맞은 놀이터였는지는 의문이 든다. 전통적 놀이터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면서 서울시의 상상놀이터라는 사업이 있다. 그런데 현대적 놀이터라고 하는 어른들 보기에 좋은 놀이터는 파손되기 쉬워서 고가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쉽다.
결국 아이들이 정말 원하고 가장 흡족하게 오랜 시간 동안 싫증나지 않고 놀 수 있는 놀이터는 ‘모험 놀이터’라는 정답이 이미 나와 있다. 모험놀이터는 한국에서 좀 생소한데 넓은 터에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일상적인 재료로 아이들이 구성하여 나가는 놀이터라 이해할 수 있다. 모험놀이터는 표준화된 놀이터도 아니며 어른들이 보기에 허술해 보이고 심지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이 점이 모험놀이터를 우리나라에서 만드는데 가장 큰 저해요인이 된다. 현행 법상 공공장소에서 모험놀이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모험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입법 활동을 할 만한 조직도 없다.
그런 담론을 만들기 위해 모험놀이터의 장점을 살펴 보자. 모험놀이터는 전통 놀이터나 현대적 놀이터의 두 가지 유형에 비해서 저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이용할 공간이니까 어른들의 눈에 시시하다 해서 진짜 주인들의 마음을 무시하면 안 된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머무는 시간을 측정하면 흥미롭게도 전통 놀이터와 현대적 놀이터는 차이가 많지 않다. 그에 비해 모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머무는 시간은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안전성과 관련하여 보아도 모험놀이터가 다른 유형의 놀이터에 비해서 사고율이 가장 낮다. 장애·특수 아동들 역시 어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과격하게 노는 경우는 드물다.
장애아 특수아 가릴 것 없이 모든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사진과 설명을 통해서 보듯 통합모험놀이터는 다른 놀이터를 만드는 데 비해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간다. 플라스틱 이나 합성수지 등의 소재를 아주 적게 사용할뿐더러 원래의 자연물과 지형을 있는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라고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이다. 이 정도의 놀이터라면 만드는 데 시공상 어려운 점도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현실적인 어려운 문제가 있다.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반영하고 취합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도 분명 어려울 것이고, 공무원들을 설득하여 공사를 진행하면서 일반 아동의 부모들과 충돌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이런 놀이터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것과 필자를 비롯한 몇 명의 의지와 활동만으로는 이런 놀이터를 단 하나라도 만들 수가 없다. 생각을 같이하고 행동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놀이터를 계획하는 단계에서는 프로젝터 등을 이용하여 장애 특수 아동들의 반응을 측정해야 한다.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보고 손뼉을 치거나 감탄하거나 함박웃음을 짓는 등의 분명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일반 아동들의 경우에는 본인들이 원하는 놀이터 디자인을 표현하고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많다. 설계를 진행하는 단계에서는 어린이 위원과 위원장이 있으면 좋다. 유럽의 경우에는 이런 과정을 거서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상례화되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시행착오가 분명 있을 듯 하다. 설계가 끝난 후에 놀이터를 시공할 때도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