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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수 Dec 31. 2020

연말정산#2 : 사람을 만나는 '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했다. 가끔은 변명 같은 이유라도 있어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니까, 일이 끝났으니까. 조금 편한 사람들에게는 날씨가 좋으니까도 괜찮은 이유 겸 변명일 수도 있다. 새로 알게 된 맛집을 가자거나,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극장을 가거나, 때론 전시회를 가자는 이유는 참 좋고 '멋'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올여름은 지독할 정도로 장마가 오래 이어졌다. 해 떠있는 시간보다 구름 낀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그래도 날씨는 언제나 사람을 만나기 좋은 변명거리여서 평소 같았다면 긴 장마도 조금은 반가웠을 수도 있을 거다. 비도 오는데 집에만 있지 말고 만나자거나, 비도 그쳤는데 집에만 있지 말고 나오라거나 다르지만 반가운 말들이다.


불행히도 20년은 그런 변명들을 자유롭게 쓰기에 코로나라는 장벽이 너무 컸다. 날씨가 좋던 나쁘던 코로나는 항상 있었니까. 코로나는 단순한 이유로 만날 수 있는 관계의 폭을 더욱 줄어들게 했다. 하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


만남의 이유들, 어쩌면 변명들을 나쁜 일에서 가져오곤 했다. 하는 일이 힘들어서, 무언가 잘 풀리지 않아서, 어떠한 관계들이 또 망가져서. 그런 일들을 불행히도 만남의 이유로 가져와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스스로 무너질 거 같을 때가 아닐까 싶었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관계 중에서 만나야만 하는 관계들이 있다. 살기 위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못했던 한해여서 평소보다 더 많은 아쉬움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건강하게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특히나 주변 사람들도 건강하여 종종 불행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내주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사람들을 만나 잘 안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서로 토하듯이 이야기하고 나면 다시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든다. 불행한 이유를 핑계로 서로에게 애써 상처 주지 않는 관계들이 남은 한 해였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버텨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거는 혼자서 버틸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버텨준 누군가가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충분히 성숙한 사람들이지만 여전히 그들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만큼 좋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나빴던 일들을 다들 정리하고 좋았던 일들을 가지고 만날 수 있는 새해가 오길 바란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두고두고 오래오래 만남의 이유로 사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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